정치인들이 느끼는 고민도 있습니다. 20~30년 전보다 상대해야 할 기자 수가 훨씬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회에 출입하는 기자는 방송사나 신문사를 포함해 수십 명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수천 명에 이릅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운영하는 카카오톡 언론공지방에는 기자가 1000명 가까이 들어가 있습니다.
정당뿐일까요? 정치인들도 이른바 ‘공보방’을 따로 운영합니다. 대부분 카카오톡 오픈채팅 서비스를 이용하지만, 일반 대화방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메일보다 메시지 전달이 빠르고, 보다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정치부 기자들, 특히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수많은 단체톡방에 들어가 있습니다. 크게는 정당 공보방, 작게는 개별 의원이 운영하는 공보방, 더 작게는 마음 맞는 기자들끼리 만든 이른바 ‘꾸미방’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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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홍보가 절실한 대선 주자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각자 앞다퉈 기자 대상 카카오톡 공지방을 엽니다. 일일이 기자들을 만나기는 어려우니, 단체톡방은 훌륭한 공보 수단이 되는 셈입니다.
때로는 방에 몇 명의 기자가 들어와 있느냐가 그 후보에 대한 ‘기자들의 관심도’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18일 오후 5시 기준으로 가장 많은 기자가 참여한 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의 공지방이었습니다. 무려 1007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한동훈 국민의힘 후보의 방으로 784명, 그 뒤를 홍준표 후보(688명),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680명)가 잇고 있었습니다. 여론조사 지지율과는 또 다른 풍경입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어떤 후보의 소식을 더 자주 접하려고 하는가’를 보여주는 참고자료로는 나름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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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초대 문제도 심각합니다. 누군가 특정 목적을 가지고 단체방을 만들어 기자들을 일방적으로 초대한 뒤, 자신의 메시지를 무차별로 뿌리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텔레그램처럼 익명성이 강한 메신저는 물론, 카카오톡조차 ‘정보 공해’ 수준의 무단 초대가 빈번합니다.
지난 17일 만들어진 ‘윤 어게인 신당 창당’ 카카오톡방이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단체방에 기자 400여 명을 한꺼번에 초대한 뒤, 오픈채팅방으로 옮겨 언론공지방처럼 사용하려 했습니다. 오픈채팅방 입장번호는 ‘1203’. 어쩐지 의미심장한 숫자였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선전과 합리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방이다 보니, 기자가 아닌 인물들도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이 몰려들더니 “2차, 3차 계엄을 하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곧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방하는 메시지가 도배되듯 쏟아졌습니다. 마치 디도스 공격처럼 메시지를 퍼부어 채팅방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1분에 수백 개의 알림이 뜨는 통에 기자들은 방을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만류로 신당 창당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계엄을 외쳤다가 4시간 만에 물러났던 것처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신당 창당 선언도 채 4시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카카오톡은 또 하나의 전쟁터가 됐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