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문화평론가·한양대 겸임교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성난 민심은 2000년대 이후 최대 규모로 광장에 모였다. 주말마다 세 번째로 모인 12일 시위에도 쇠파이프나 물대포는 없었다. 민심은 폭력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분노, 좌절의 부정적 감정이 풍자, 해학, 유머라는 긍정적 표현으로 넘쳐났다.
스트레칭 시범을 하며 3억5000만원을 들여 보급하고자 했던 차은택의 ‘늘품체조’ 대신 3500원짜리 ‘하품체조’를 가르쳐줬다. 인디 밴드 크라잉넛은 ‘말(馬) 달리자’를 부르며 “원래 크라잉넛 노래인데 이러려고 크라잉넛을 했나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상복을 입고 상여를 끄는 퍼포먼스를 했고 커다란 세월호 모형이 등장했다.
촛불집회의 의미는 모든 걸 뜯어고치자는 시스템 혁명이 아닌 최소한 헌법적 가치에 충실하자는 시스템 복구라는 상식적 판단을 원하는 요청이 숨어있다. 민심을 보여줬으니 거국내각이든 구체적인 결과를 보여주라는 의미다. 오는 26일로 예정된 또 한 차례의 촛불집회는 앞으로 2주안의 정치상황에 달려있다.
촛불 민심의 상식적 요구는 해시태그()를 붙여 각종 패러디라는 풍자로 만들어졌다. 해시태그()를 붙여 각종 패러디를 만들어내고 이 패러디들이 시위 현장에서 쓰였다. 방송에서도 KBS 2TV ‘개그콘서트’, MBC ‘옥중화’ ‘무한도전’, SBS ‘런닝맨’, tvN ‘SNL’ 등의 프로그램에서 풍자가 등장했다. 가수 이승환·이효리· 모세 등은 이번 사안과 관련된 노래를 출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성난 민심이 폭력이 아닌 풍자로 살아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분노를 느끼는 대상과 스스로를 분리하며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에 있을 것이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조차 ‘너의 나라가 샤머니즘 나라냐. 미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서 폭력까지 행사하는 비이성적 국가에 살고 있지 않다고 말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인 셈이다. 스스로 민주주의 시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조선시대의 봉건적인 체제를 비판하는 실학파 문학처럼 풍자는 사회가 갈등을 일으킬 때 발달한다. 풍자는 ‘가득히 담긴 접시’라는 라틴어에 뿌리를 둔다. 어원에서 유추해본다면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히 담겨 있다 밖으로 표출되면서 풍자라는 형식을 빌게 되는 것이 아닐까.
풍자는 불합리한 가치관이나 체제를 비판하기 때문에 통제 대상이 되어 왔다. 이승만 전(前) 대통령을 풍자한 영화 ‘잘 돼갑니다’는 1968년 상영 부적합 통보를 받고 20년 뒤 개봉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말할 정도였다.
더구나 웹 2.0 시대를 한창 살아가며 이제는 시민의 손에 각자의 미디어가 쥐어져 있다.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프로 가수 노래가 아니어도,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고 SNS에 유통시킬 수 있다. 누구나 풍자와 해학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시위 현장에 유모차 부대와 청소년까지 참여해 과거 시위에서 나타났던 물리적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풍자도 한 몫 했다. 풍자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지만 강력한 구호에 거부감을 느낄 법한 평범한 시민들도 온라인에서 만들어내던 풍자를 오프라인 광장으로 전환시키는데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SNS에서 만들거나 공유했던 해시태그나 사진을 인쇄하여 피켓으로 들고 나오며 무력 투쟁 대신 평화로운 방법으로 주장을 관철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일종의 축제처럼 모인 것이다. 민심이 분노가 아닌 풍자의 축제로 만들었다고, 그 분노가 사라진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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