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내가 아는 대선후보]박영선이 본 정치 신인 '이재명'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김유성 기자I 2025.06.02 05:15:00

박 전 장관 "부지런했던 사람" 회상
2007년 정동영 캠프에서 함께 일해
언론 주목 안할 때 SNS로 활발히 소통
바닥 훑으며 낙선 딛고 일어나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22대 국회 다수당 대표에 이어 대선 후보까지 된 이재명. 그의 정치 경력 시작은 초라했다. 초반 몇 년은 낙선의 고배를 마시며 보내야 했다.

당내 다른 이들은 정치신인 이재명을 어떻게 기억할까. 4선 국회의원으로 한국 헌정사 최초 여성 원내대표를 지냈던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그를 “부지런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박 전 장관은 이 같은 성실한 모습이 하나하나 모여 오늘의 이재명이 됐다고 봤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사진 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사진 오른쪽). (사진=박영선 전 장관 SNS)
연거푸 마셨던 낙선의 고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정치 경력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거비 보전이 제도화되는 등 ‘돈 덜 드는 선거’가 어느 정도 가능해지자 성남에서 도전을 시작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2008년 총선에서는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

그러나 정치의 벽은 높았다. 성남시 내 시민운동가로 이름을 알렸지만 시민들은 좀처럼 그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는 무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기성언론은 물론 지역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기도 민주당계 후보에게 불리한 때였다. 당시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 정서가 뚜렷했다.

박영선 전 장관이 이재명 후보를 만나게 돼 가깝게 지내게 된 때는 2007년 정동영 당시 대선후보 캠프에서였다. 초선의원이었던 박 전 장관은 MBC 선배 정동영 의원의 지원실장을 맡았다. 이재명 후보는 부실장으로 캠프에 합류했다.

그 즈음 김낙순 전 의원(17대 국회)으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정치 신인’ 이재명을 잘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김낙수 전 의원이 했던 말을 박 전 장관은 이렇게 기억했다.

“내가 조직을 맡고 있잖아. 그런데 성남에서 변호사 하던 사람이 캠프에 들어왔는데… 내가 보기엔 조직 묶기가 아니야. 머리가 너무 좋아. 그래서 내 머리로는 감당이 안 되니, 그래도 나보다 머리가 조금 좋은 자네가 맡아줘. 난 감당이 안 돼. 진지한 부탁이야. ”

‘기가 센’ 박영선이 ‘굽히지 않는’ 이재명을 ‘컨트롤 해달라’는 부탁으로 해석될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실장·부실장으로 원만하게 일을 해나갔다.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1강 독주 체제에서 누가 봐도 패배가 예상됐던 터라 ‘싸우고, 따지고’ 할 게 없었다고 박 전 장관은 회상했다.

그 대선 이후에도 정치 신인 이재명의 행로가 바로 좋아지지는 않았다. 2008년 총선(분당갑)에서 한 번 더 낙선한 뒤에야 성남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 어렵게 얻은 성남시장 자리였지만 ‘스타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역 밑바닥부터 훑고 중앙정치 무대로 올라가야 한다는 점은 여느 정치신인과 다를 게 없었다.

이재명이 박영선에 한 조언

이재명 후보는 스스로 길을 찾았다. 2009년 국내 스마트폰의 보급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은 그에게 기회였다. 기성 언론을 통하지 않고도 유권자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었다.

박 전 장관은 한 가지 에피소드를 기억했다. 2014년 광화문 집회 때 우연치 않게 같은 자리에 앉게 됐던 때였다. 이 후보는 틈틈이 스마트폰을 열어 SNS에 올라온 시민들의 질문에 답을 해주고 있었다.

이런 이 후보를 본 박 전 장관은 “어떻게 한 명 한 명 다 답변해 주냐”고 물었다. 그가 보기에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SNS를 적극적으로, 그것도 부지런하게 직접 활용하는 정치인을 좀처럼 보지 못한 이유가 컸다.

이재명 후보는 “대표님도 하셔야 합니다. 여기에 여론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고 답변했다. 이를 인상깊게 본 박 전 장관은 훗날 끊임없는 시민들과의 소통이 오늘날 이재명을 만들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박영선 당시 의원에게 조언도 했다. 그때 박 전 장관은 정치적으로 힘들 때였다. 야당(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로 당 안팎에서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사고 후 정국이 뒤숭숭한 가운데 그에 대한 비토(veto·거부권)이 튀어나왔다. 이 후보는 박 전 장관에 “버티는 법도 아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다시 만나 진중한 대화를 나눴던 때는 2021년 8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직전 때였다. 박 전 장관과 이 후보는 ‘선문명답’(박영선이 묻고 이재명이 답하다)라는 제목으로 콘텐츠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때도 박 전 장관은 정치적으로 힘든 때였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자리를 포기하고 나갔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봐야 했다. 그의 정치생활 첫 낙선이었다.

이 후보는 박 전 장관을 위로하면서 “저도 떨어지면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면서 “힘드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링컨은 낙선해보지 않은 사람은 중용하지 않았다는데 나중에 보니까 진짜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선거에 쉽게 당선된 사람들이 국민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 후보는 “큰 약이 될 것”이라며 박 전 장관을 다독였다.

이후 이 후보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됐고 2022년 3월 9일 대선에서 0.73%포인트 차이로 낙선했다. ‘국민의 무서움’을 느꼈던 그는 절치부심 끝에 2025년 6월 3일 또 한 번의 대선을 결과를 기다리게 됐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지

제21대 대선

- 오세훈 “대선 불출마 아쉽지만 잘못된 결정 아냐” - 오세훈 “빈의 공공임대주택 공급 가장 인상 깊어” - "개혁신당과 합당도" 오세훈, 국힘 쇄신 낙제점…"몸부림쳐야"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Not Authoriz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