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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가 중무장한 군경에 의해 침탈당했던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는 와중에 벌어진 법원 폭동 사태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다. 법치주의 상징인 법원이 폭도로 돌변한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 의해 침탈당함으로써 30년 넘게 쌓아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근본 원인은 윤 대통령과 그 주변 인사들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검찰총장 출신으로서 검찰 재직 시절과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줄곧 ‘법치주의’를 외쳤던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철저하게 자신의 과거 말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일관했다.
비상계엄 사태가 수습된 지 3일 후로서, 국회의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이 예정됐던 지난달 7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보여준 모습은 정반대에 가까웠다. 또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접수통지 서류조차 수령을 거부했다. 송달이 되지 않을 경우 재판이 지연된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앞서 두 차례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변론 전략이었다. 결국 헌재가 지난달 20일 송달 간주 결정을 한 후에야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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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총장 출신의 노골적 법치 무시…법원 판단까지 ‘불법’ 주장
공수처가 수사를 이첩받은 후 독자적 수사에 나선 이후엔 수사 비협조는 더욱 노골화됐다.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논리만 주야장천 앞세우며 “불법수사”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자 이번엔 법원의 영장마저 “관할 위반”까지 더 하며 “불법영장”이라는 억지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공수처법은 31조에서 ‘공수처가 공소제기하는 사건의 1심 재판 관할은 서울중앙지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점을 근거로 두고 있다. 하지만 같은 법조항은 ‘다만 범죄지, 증거의 소재지, 피고인의 특별한 사정 등을 고려해 수사처검사는 형사소송법에 따른 관할 법원에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공수처가 어떤 구체적 의도로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했는지 알 수 없지만, 대통령실 관저 등이 위치한 용산구의 관할 법원인 서울서부지법에 영장을 청구한 자체로 ‘관할 위반’ 주장을 하는 것은 수용될 수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대법원은 물론 법무부까지 나서 영장엔 문제가 업다고 했지만 윤 대통령 측은 막무가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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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 출신이 다수 포함된 여당 의원들 수십 명이 체포영장 집행을 막기 위한 ‘윤석열 사수대’로 나서기까지 했다. 체포영장에 대한 이의신청이 서울서부지법에서, 체포적부심이 서울중앙지법에서 모두 기각됐지만 “서울서부지법 발부 영장은 불법”이라는 논리를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복했다.
결국 이 같은 억지주장 속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했던 2명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물론 이의신청을 기각한 부장판사, 구속영장을 발부한 부장판사 모두 이전 근무지가 서울중앙지법이었다. 1심 판사들의 경우 통상 3년 만에 한 번씩 법원이 바뀌는 인사가 이뤄진다.
◇尹·與, 느닷없는 ‘서부지법’ 표적 공격→지지자들, 반감 극대화
특히 그중 한 명은 서울중앙지법서 강원랜드 채용비리 혐의로 기소됐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또 다른 판사는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의 입시비리 사건 등에서 징역 2년의 실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다른 한 명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인 정진상 민주당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을 기각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과 별개로 윤 대통령의 극단적 지지자들은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의 서울서울지법에 대한 비판 속에 ‘서울서부지법’에 대한 극단적 반감에 이르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가 19일 밤 발생한 민주화 이후 초유의 법원 폭동 사태였다. 그리고 같은날 공수처 검사·수사관들이 탄 차량 역시 폭도들로 변신한 이들로부터 습격당했다.
이번 사태와 별개로 법원 판단에 대한 정치권의 불신 조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법원의 유죄 판결을 인정하는 정치인을 찾아보는 게 오히려 어려운 실정이다, 본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법원 판결을 노골적으로 비판해오던 오랜 악습이 축적되며 우리나라의 사법불신이 한층 가중됐다는 지적이다.
가깝게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1심 판결에 대한 민주당 차원의 판사 공격이 대표적이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이 대표에 대한 1심 판결 이후 “사법살인”, “사법부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최악의 판결”, “정치 판결” 등은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박정희정권 시절 간첩 누명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쓰이던 ‘사법살인’라는 용어까지 사용한 것이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서울법대 나온 판사가 맞냐”, 주철현 최고위원은 “선출되지 않은 임명직 법관이 대선후보급 정치인의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폭거”라는 비판했다. 심지어 한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독자적 판단으로만 했겠느냐”는 등의 황당 배후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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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 전, 與 “野 판사 악마화”…뒤바뀐 공수
더욱이 민주당 이건태 의원은 ‘공범 유죄 선고 사건’에 관여한 경우 사건을 제척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이 개정안이 실제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나 중요임무종사자 등의 1심 판결이 나온 이후 기소되는 공범들의 경우, 사건 내용을 아는 기존 재판부의 재판 심리가 원천적으로 금지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국민의힘에서 당시 이 같은 민주당의 행태에 대해 “판사 악마화”, “판사 겁박”이라고 거세게 비난했지만, 불과 두 달 만에 여야의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정치권의 이 같은 사법불신 조장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여당 관련해선 뇌물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중형 확정판결을 받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단 한 번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법원이 첩보 유출 혐의에 대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던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을 불과 3개월 만에 사면·복권하며 노골적으로 사법부 판단을 무시했다.
야당도 다르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뇌물죄로 징역 2년 확정 판결은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한 전 총리가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은 날,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은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서,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에선 재조사를 촉구하며 검찰을 압박하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정치권이 노골적 사법불신을 조장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판사들이 판결 선고 외에 정치권 주장에 대해선 일절 대응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법원 판결을 깎아내리며 사법 불신을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과거 부패전담 재판장을 했던 한 법관 출신 인사는 “판결 사건 중, 명확한 증거에도 혐의를 끝까지 부인했던 정치인은 훗날 재기했고 순순히 혐의를 인정했던 다른 정치인은 ‘나쁜 놈’으로 정치인생이 끝났다”며 “잘못된 정치문화가 사법에 대한 국민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