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 임신 계획 있다면 '치핵 수술' 미리해라

이순용 기자I 2014.06.12 06:17:50
[유상화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과장] 임신 28주째인 32세 한 여성이 항문에 덩어리가 만져지고 통증이 심해져 밤에 잠을 한숨도 못 잤다며 외래로 내원했다. 진찰 결과 ‘감돈 치핵’으로 확인되었고, 괴사까지 진행한 상태라 응급 수술을 해야 했다.

감돈 치핵은 3기 혹은 4기의 탈출성 치핵이 부종이 심해지면서 항문 안으로 복원이 안 되는 상태를 말한다. 심한 통증과 출혈 증상이 동반되며, 경우에 따라 궤양과 괴사로 진행해 응급수술을 필요로 한다. 이 여성은 임신 전에도 치핵으로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 어른들이 어차피 임신하면 치핵이 또 생길 터이니 아기를 낳고 수술을 하라고 하여, 수술을 미루고 있다가 괴사까지 진행됐던 것이다.

외래 진료를 보다 보면 여성들이 임신과 치질수술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례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기혼 여성들에게 치핵수술을 권했을 때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도 ’임신 계획 중인데 미리 수술을 해야 하느냐‘, ’임신하면 치핵이 또 생긴다는데 분만하고 하면 안되느냐‘ 등의 내용이다. 이렇게 잘못된 정보로 본인의 질병을 키우고 있는 환자들을 접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다.

사실 임신을 하면 없던 치핵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숨어 있던 치핵의 증상이 나타나거나 혹은 기존의 치핵이 악화되는 것이다. 임신 초기에는 호르몬 변화로 인해 변비가 심해지고 항문 조직이 약해져 치핵이 악화될 수 있다. 그리고 임신 중, 후반에는 자궁의 크기가 커지면서 항문으로 가는 혈액순환을 저하시켜 치핵이 심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임신 전에 탈출된 치핵이 만져진다면 미리 수술을 받아야 임신 중에 조금이라도 고생을 덜 수 있다.

하지만 임신 전에 치핵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임신을 한 상태에서 치핵이 악화되었다면, 우선적으로는 식이요법이나 온수 좌욕을 통한 보존적 치료를 권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에도 통증이나 출혈이 심해지거나 괴사가 동반된다면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게 된다.

마취 때문에 임신 중 수술을 꺼리는 임산부들도 많은데, 치핵 수술은 하반신 마취로 그 용량이 작아 태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수술로 인한 스트레스, 수술 후 통증이 분만을 유도할 수는 있다.

간혹 임신 중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분만 후 치핵이 악화되어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있다. 이 경우에도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태가 아니라면 보존적 치료를 먼저 시도하고, 산욕기(출산 후 6주 정도)가 지난 후 수술적 치료를 권한다.

출산 후에는 모유 수유 때문에 수술적 치료를 망설이시는 분들이 많은데, 수술 후 사용하는 약제들은 대부분 간이나 콩팥으로 배출되므로 모유를 통해 아기에게 전달되는 것은 극소량이다. 따라서 수유 중에도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유상화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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