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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20년 12월 부임 이후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어떻게 하면 공공외교를 펼쳐 나갈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사우디에 주재하는 대사관, 총영사관은 공무원을 면담해도, 조그마한 문화행사를 계획해도 사전에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여러 여건을 감안한 결과, 김치로 한 번 승부를 걸어보자 마음먹었습니다.
사우디에서는 양, 낙타, 닭고기를 쌀과 요리한 만디를 쟁반에 올려 담아 여러 사람이 나눠먹습니다. 일종의 국민음식 중 하나입니다. 맛은 있는데, 좀 느끼합니다. 그래서 보통 양파를 곁들여 먹고, 우리 동포들은 양파 이외에 김치를 곁들여 먹기도 합니다. 저는 거기서 김치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지인에게 만디와 김치를 결합한 이벤트를 해보겠다고 말했더니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컨설팅을 하는 사우디인을 만나 이 아이디어를 얘기했더니 그는 전문가답게 그럼 규모가 큰 만디 식당을 공략해 보라고 이야기 해줬습니다. 옳거니! 무릎을 탁 친 저는 젯다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만디 체인 식당인 ‘알 싸다’을 공략했습니다. 사장이 수도 리야드에 분점을 여러 개 내느라 그 곳에 상주하다시피 해서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가까스로 면담 요청 2개월 만에 드디어 인삼차 한 박스 들고 허름한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만디와 김치 콜라보에 대해 설명했더니 당장 반응이 왔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습니다. 바로 관저에 초청해서 김치를 테마로 하여 한식을 대접했습니다. 역시 사람이 다르니 입맛도 다르나 봅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숙성된 김치가 입에 감기는데, 사우디인 입장에서는 사각사각 씹히는 김치 샐러드가 좋다고 합니다. 김치 샐러드로라도 일단 관심을 끌었다면 1차 관문을 통과한 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어서 식당 종업원들의 시식을 위해 전통 김치, 그리고 김치 샐러드를 마련해서 보냈습니다.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김치 샐러드는 한 번 해볼 만하다는 것입니다. 관저 요리사가 만디 식당에 가서 김치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면, 이를 응용하여 사우디인 입맛에 맞는 김치를 스스로 만들어보겠다 합니다. 아직 원하는 지점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보입니다. 살짝 김칫국을 마셨습니다.
처음부터 정통 한국 김치를 알리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지 선호 등을 넘어야 하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나름 김치를 만들어 보도록 놔둬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제 정통 김치를 먹어보고 싶은 시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우리 한국인이 먹는 김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김치는 먹거리를 넘어선 산업입니다. 김치를 먹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면 사우디 고지대에서는 배추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생겨나고 한국에서 젓갈과 고춧가루를 수입하는 가게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김치를 담고, 판매하고 배달하는 다양한 가게들이 생겨나서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겠습니다. 일부 매니아는 김치냉장고도 수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김치냉장고에서 김치가 서서히 익어가는 사우디를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