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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1. 머리에 나사 박힌 괴물. ‘프랑켄슈타인’이 태어난 곳이 어딜까. 영국? 이제 국적이 하나 더 늘었다. 한국에서 뮤지컬로 탄생해서다. ‘프랑켄슈타인’(충무아트홀·5월 11일까지)이 뮤지컬로 제작된 건 전 세계에서 이번이 처음. 개막한 지 한 달이 안 돼 일본·중국 등에서 라이선스 요청이 왔다.
2. ‘모차르트!’ ‘엘리자벳’ ‘레베카’ 등 유럽뮤지컬을 주로 수입했던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가 지난달 창작뮤지컬 ‘마타하리’의 제작을 깜짝 선언했다. 2015년 11월 국내에 먼저 선보인 뒤 미국과 영국에서 월드투어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창작뮤지컬 시장에 불이 붙었다. 판이 커지는 모양새다. 국내시장을 넘어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제작이 잇따르고 있다. 눈에 띄는 건 창작뮤지컬이 ‘한복’을 입지 않았다는 점. 전통 소재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명성황후’ ‘영웅’ 등의 제작자로 유명한 윤호진 에이콤 대표도 신작으로 ‘보이체크’(LG아트센터·10월)를 택했다. 세계적인 콘텐츠로 해외무대를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각오다. ‘그날들’ ‘해를 품은 달’을 만든 이다엔터테인먼트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2015년 예정)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세계시장을 넘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적 소재가 글로벌 콘텐츠로선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 ‘프랑켄슈타인’ 총괄프로듀서인 김희철 충무아트홀 기획본부장은 “‘유통 여건 등을 고려해 전 세계인이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아이템에서 소재를 잡았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언어도 다른데 소재까지 낯설면 영미권 시장 공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 제작진에게도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EMK는 ‘마타하리’ 작곡을 ‘지킬 앤 하이드’로 유명한 프랭크 와일드혼에 맡겼다. 윤호진 대표도 영국 웨스트엔드 창작진과 7년 동안 ‘보이체크’를 준비했다. ‘보이체크’의 2012년 영국 워크숍 공연에서는 ‘레미제라블’을 연출한 매트 라이언과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음악감독 나이젤 릴리가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우리나라 뮤지컬시장은 해외 뮤지컬 라이선스 위주로 성장해 연출·극작·작곡가 등 창작 스태프 층이 다양하지 못하고 경력이 짧은 게 약점. 콘텐츠의 내실을 다지고 브랜드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지명도 있는 해외 제작진과의 작업은 뮤지컬의 시장가치를 높여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미권 현지화에도 유리하다. 또 창작뮤지컬의 글로벌화는 뮤지컬산업 체질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창작을 통해 제작사들의 수익구조를 건강하게 할 수 있고, 글로벌 소재를 통해 매출 창구를 넓힐 수 있다.
국내 뮤지컬 시장은 ‘빛 좋은 개살구’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5년 동안 10%대 성장을 기록하며 지난해 3000억 규모로 시장은 커졌지만 제작사들의 속병은 깊어갔다. 겉으론 호황인데 돈을 벌었다는 제작사는 찾기 어려웠다. 티켓 수익의 20~30%가 외국으로 새나갔기 때문이다. 공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외 대형 뮤지컬의 경우 한국에서 수익배당금으로 티켓 수익의 15%를 내야하는 데다 10%대의 저작권 수입(로얄티)도 지출해야 한다. 여기에 외국 제작진과 스태프 국내 체재비까지 지원하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게 제작사들의 중론. 엄홍현 EMK 대표는 “라이선스 뮤지컬은 비싼 로열티 등으로 인해 흥행에 성공해도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라며 “꾸준히 좋은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선 반드시 창작뮤지컬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09년 회사를 세운 후 5년 만에 내린 결정이다. 국내 배우들의 출연료가 치솟아 해외시장에 눈을 돌 수밖에 없는 상황도 한몫했다.
하지만 창작뮤지컬의 세계화 작업에 “자축은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 제작진이 만든 작품을 과연 ‘국내 창작물’이라고 봐야 하는 지에 대한 지적이다. 하지만, 창작뮤지컬의 의미를 ‘한국뮤지컬’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게 목소리도 나온다. 김병석 CJ E&M 공연사업부문 대표는 “창작뮤지컬시장에서 중요한 건 공연 권리의 주체, 즉 원천 권리”라며 “콘텐츠를 개발해 해외시장에 먼저 제안하는 사업구조를 만드는 게 영미와 아시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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