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기적 바라”…벤처투자 현상유지할 것

김경은 기자I 2025.01.13 05:35:05

[길어지는 벤처투자 혹한기]④“어려울수록 투자”…모험자본·혁신금융 역할론 강조
유망분야 창업 러시 기대
유망 분야는 올해도 AI…활용도가 성패 가른다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올해 벤처 생태계의 잿빛 전망 속 ‘노키아의 기적’을 바라는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노키아의 몰락이 핀란드 창업의 꽃을 피웠던 것처럼 국내 경제 침체 상황이 벤처 생태계 부활의 신호탄이 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에서다. 특히 인공지능(AI)과 같은 딥테크 분야에서 기회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이데일리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벤처캐피털(VC)과 액셀러레이터(AC) 10곳 중 9곳(86.6%)은 올해 투자 집행을 지난해와 비슷하게 유지(73.3%)하거나 확대하겠다(13.3%)고 응답했다. 불확실성 심화에 따른 투자 위축 우려와 달리 실제 투자를 축소하겠다는 응답은 13.3%에 그쳤다.

이 같은 투자 기조는 경제 위기일수록 모험자본, 혁신금융의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업계의 판단에서다.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수준)을 고려하면 지금이 투자 적기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VC는 시장 환경이 좋지 않을 때 투자해야 한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2년 유로존 채무위기 당시를 돌이켜 보면 가장 위험했던 투자가 가장 좋았던 성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한국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금 선순환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VC의 투자는 확실한 회사에 몰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이런 투자 기조는 혁신금융이라고 할 수 없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어붙은 스타트업…노키아의 기적 일어날까

반면 스타트업들은 당분간 투자유치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비용 절감, 수익성 강화 등 긴축 기조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업계의 이런 자구책이 위기 속 기회를 만들고 나아가 창업 열기를 확산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실제 핀란드에서는 국민기업이었던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의 몰락이 창업 생태계 구축의 기회가 됐다. 노키아를 떠난 우수한 인력들이 창업에 나서면서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핀란드는 인구수 대비 스타트업이 가장 많으며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나라로 꼽힌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경제 불확실성으로 올해 상반기는 완전히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하반기에는 어느 정도 반등하지 않겠나”라고 예측했다. 이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경제 이론과 달리 공급이 수요를 만들기도 한다”며 “노키아가 망한 뒤 수백개의 스타트업이 생긴 것처럼 올해 국내에서도 구조조정으로 인해 대기업, 연구원 출신의 기술 창업이 반짝할 가능성이 있다. 창업의 풀이 작년, 재작년보다 나아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은 “벤처·스타트업은 사업을 축소하고 본질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며 “동사(凍死)하지 않기 위해 서로 부둥켜안는 것처럼 인수합병(M&A)도 많이 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만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지금과 같이 겨울이 깊을 때 봄을 준비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외부 환경은 안 좋지만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달렸다”며 “모바일 기반의 벤처기업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태동했다”며 “스타트업 생태계는 시장이 가장 안 좋을 때 시작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AI 대세 이어진다…AI 융합 기술에 주목

업계에서는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AI, 딥테크 중심의 성장을 전망했다. 이번 조사 대상의 70%는 올해 유망 분야 키워드로 AI를 꼽았다. 다만 AI 자체보다 AI를 활용해 어떤 기술, 서비스를 만드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한 VC 파트너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대세는 AI”라면서 “다만 AI의 분화가 이뤄지면서 같은 AI 기업이라고 해도 희비가 엇갈리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AI 기반 활용 기술 및 효율화에 주목하고 있다”며 “AI 바이오, AI 에너지 등 AI 융합 기술이 유망하다”고 말했다.

조사 대상자들은 AI 외에 로보틱스, 우주·항공·방산 등을 유망 분야 키워드로 꼽았다. 시장 상황을 고려해 타 업종 대비 저평가 구간에 놓인 업종을 발굴하겠다는 응답도 있었다. 유망 업종(복수응답)은 ‘ICT 서비스’가 7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바이오·의료(35%) △ICT·제조(30%)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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