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10월24일 20시44분에 마켓인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마켓in 지영의 기자]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리밸런싱(자산 비중 재조정) 결정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증시 상승기에는 국민연금의 대규모 주식 매도가 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컸지만, 주가가 급락하자 매도를 늦춘 결정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는 실정이다.
논란은 국정조사·특검 요구로까지 번졌다. 시장에서는 과도한 사후 책임 공방이 향후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결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입자의 장기 이익보다 정치적 책임을 피하는 방향으로 운용 판단이 기울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가 꺾이자 정치권 '정쟁 도구' 된 연금
23일 금융투자업계 및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리밸런싱 유예를 둘러싼 여야 간 갈등이 국정감사 이후 한층 격화하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2일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 과정에 정치적 개입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했다.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연금을 불법 동원했다면 대통령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여당은 즉각 반발했다.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은 장기투자 기관인 국민연금을 단기 주가 등락으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맞섰다. 최근 야권이 비판하는 182조원대 손실 주장에 대해서도 일부 상장사 보유주식의 평가액 감소를 국민연금 전체 기금의 운용손실로 확대 해석한 것이라며 반박했다.
논란의 발단은 올해 초 추진된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기준 변경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1월 전략적 자산배분(SAA) 이탈 허용범위를 벗어날 때 발동되는 국내주식 리밸런싱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유예했다. 이어 5월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국내주식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대폭 상향 조정하고 허용범위도 넓혔다. 일일 최대 리밸런싱 규모를 축소하는 등 매매 기준도 조정했다.
리밸런싱은 주가 상승 등으로 특정 자산의 비중이 높아지면 일부를 매도해 미리 정한 투자 비중으로 되돌리는 작업이다. 국민연금의 지난 2월 말 국내주식 비중은 24.5%로, 당시 목표 비중(14.9%)은 물론 전략적·전술적 자산배분 허용범위를 합산한 상한(19.9%)을 4.6%포인트 웃돌았다. 기존 투자 기준으로는 국내주식 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압력이 커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리밸런싱 유예에 이어 5월 목표 비중을 20.8%로 높이고 허용범위까지 확대했다. 당시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조치로 국민연금발 대규모 매도 부담이 줄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문제는 이후 증시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시작됐다. 기존 자산배분 기준에 따라 국내주식 비중을 미리 줄였다면 최근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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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단죄' 반복되면 자산배분 판단에 부담
시장에서는 리밸런싱 결정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향후 국민연금의 투자 판단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주식 비중을 줄일 경우 대규모 매도에 따른 시장 충격이 논란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비중을 유지한 뒤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을 줄이지 못했다는 책임론에 직면하는 기형적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투자 결정의 적절성을 판단할 때 당시의 시장 여건과 위험분석보다 사후 수익률이 강조될 경우 운용 책임자들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장기 기대수익률과 위험을 고려한 판단 외에 향후 정치권의 비판 가능성까지 의식하게 되면 자산배분 과정에서 책임 회피 성향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치권의 직접적인 매매 지시가 없더라도 반복적인 책임 공방이 운용 독립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수익성과 안정성뿐 아니라 공공성과 운용 독립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기관이다. 대규모 매매가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증시 상승이나 하락 자체를 책임지는 기관으로 볼 수도 없다.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한 판단과 정부의 정책적 목적에 맞춘 투자 결정은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당시 자산배분 기준을 바꿀 만큼 충분한 분석이 있었는지는 따져봐야 할 지점이 있다"면서도 "다만 단기간 내에 오르내리는 주가에 따른 장부상 손익만으로 당시의 투자 결정 전체를 틀렸다고 몰아가는 것은 장기투자의 기본 원칙을 모르는 것이고 위험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연말 SAA 재점검·중기자산배분 다가오는데…시험대 오른 연금 독립성
국민연금은 올해 말 한시적으로 확대했던 SAA 허용범위를 재점검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2028~2032년 중기자산배분안도 마련해야 한다. 향후 5년간 국내외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등에 얼마를 배분할지 결정하는 중요한 절차다.
국민연금의 2027년 국내주식 목표 비중은 올해와 같은 20.8%로 이미 설정돼 있다. 올해 말에는 한시적으로 확대했던 SAA 허용범위를 재점검하고, 내년 상반기에는 2028~2032년 중기자산배분안을 마련해야 한다. 향후 국내외 금융시장 여건과 장기 기대수익률, 위험 수준 등을 토대로 자산군별 투자 비중과 운용 기준을 다시 검토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계속해서 정치권의 도마에 오르고, 단기 주가 향방은 물론 정치권의 여야 공방까지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자산배분 논의 부담이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정치권의 비판을 피하는 것이 운용의 기준이 되면 정작 가입자에게 유리한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국민연금이 정치적으로 안전한 선택이 아니라 국민 노후자금의 장기 수익성을 높이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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