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일제 강제징용 배상사건 오늘 선고…후폭풍 예고

한광범 기자I 2018.10.30 04:00:00

"전범기업 배상책임 있다" 2012년 결론 유지할지 관심
재판거래 의혹 판결…朴정부, 배상판결 노골적 반발
한일관계도 영향…日정부 "패소 털끝만큼 생각 안해"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 내 임시보관된 강제징용 노동자상.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30일 오후 내려진다. 이번 재판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재판거래 의혹과 한일 외교관계에 직접 관계돼 있는 만큼 판결에 따른 파장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이춘식(94)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전범기업인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한 재상고심 판결을 선고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 2012년 5월 대법원 소부 판결 이후 6년 5개월, 파기환송심 판결 이후 5년 3개월 만이다.

관심은 대법원이 지난 2012년의 결론을 유지할지 여부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당시 1·2심 판결을 뒤집고 이씨 등에 대한 신일본제철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구체적으로 △일본 최고재판소의 원고 패소 확정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전범기업이 한국법 위반으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며 △개인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협정으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결론 냈다. 파기환송심은 2013년 7월 대법원의 이 같은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원고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1·2심 “‘원고 패소’ 日 판결 효력 인정…청구권 시효완성”

반면 앞서 1·2심은 원고 중 여운택·신천수씨와 나머지 3명에 대해 다른 근거를 내세워 이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여씨 등에 대해선 일본 최고재판소의 확정 판결에 따라 기판력이 인정된다며 패소판결했다.

여씨 등은 1997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1·2심에서 모두 패소한 이후 2013년 10월 최고재판소에서 패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일본 법원에서 패소한 이들은 이에 2005년 2월 같은 취지의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1·2심은 “일본 판결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될 수 없다고 할 수 없어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이 인정된다”며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돼 종전 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본안에 관해 더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유 없다”고 기각 판결했다.

나머지 3명에 대해선 강제징용이 국내법을 위반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고 한일협정에 의해서도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도 신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을 승계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덧붙여 청구권 시효 역시 한일협정 당일(1965년 6월22일)로부터 10년 이후 소멸됐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사진=방인권 기자)
대법원은 지난 2012년 이 같은 하급심 판단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외국법원 확정판결 효력을 인정하는 것은 대한민국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민사소송법 217조 3항을 근거로 일본 법원의 확정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 2012년 “잘못된 일본법 적용한 일본판결 인정 안돼…배상 책임 인정”

구체적으로 “일본 법원 판결의 이유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 인식을 전제로 해,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이씨 등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며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 명백해 일본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신일본제철이 구 일본제철을 승계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일본법이 아닌 한국법을 적용해야 한다면 이 경우 두 회사 간 동일성이 유지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아울러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해서도 “한일협정에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해 양국 정부의 의사 합치가 있었다고 볼 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다”며 개인청구권이 유지된다고 결론 냈다. 또 “이씨 등이 2005년 2월까지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며 하급심의 시효완성 판단도 뒤집었다.

당시 대법원 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컸다.

◇박근혜정부 한일관계 등 이유로 대법 판결에 불만

검찰 조사 결과 박근혜정부는 대법 판결을 불편해했다. 한일협정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주도로 체결됐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파기환송심 이후인 2013년 말과 2014년 하반기 당시 법원행정처장(차한성·박병대)를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재판 결과에 대해 논의했다. 여기엔 윤병세 전 외교부장관,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이 참석했다.

재상고심이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결론까지 5년 넘게 걸린 것을 두고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정부가 재판을 두고 모종의 거래를 한 것이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상고법원에 총력을 기울이던 양승태 사법부가 박근혜정부 청와대를 설득하기 위한 카드로서 활용했다는 의혹이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판결 결과에 상관없이 이 같은 재판거래 의혹의 여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도 이번 판결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29일 일본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배상 청구는 50여 년 전에 이미 끝난 얘기”라며 “신일본제철 패소 가능성은 털끝만큼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배상 판결이 확정될 경우 우리 정부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고 주한일본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는 방안 등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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