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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이웃나라 일본 경제의 이미지는 극과 극이다. 첫째는 소니와 도요타다. 초일류 가전과 자동차를 앞세워 천하를 호령하던 게 1980년대다. 두번째는 부동산 폭락이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을 덮친 ‘잃어버린 20년’이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디플레이션(물가가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하는 현상)의 무서움을 잘 몰라요. 태어나면서부터 좋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인플레이션도 겪고 디플레이션도 겪은 나이 든 사람들은 너무 잘 알아요. 소비를 계속 미루니 뭐든 가치가 떨어졌어요. 자살자와 고독사가 증가하는 사회붕괴 현상도 나타났어요.”
이랬던 일본 경제가 요즘 화제다. 긴 불황의 터널을 뚫고 반등의 기미가 보인다는 것이다. 한물 간 줄 알았던 소니가 70년 역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건 하나의 상징이다. 가마솥 속 개구리 신세는 이제 끝나가는 것인가. 일본 경제와 닮아 있다는 한국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데일리는 30년 넘게 일본 경제를 연구한 이지평(55)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을 지난 2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도쿄 태생의 그는 다소 어눌한 발음으로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디플레이션이 사라졌다’고 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신호”라고 말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끝났나.
△아베 총리가 정치적으로는 어려운데 경제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디플레이션이라고 하기에는 경제가 아주 좋아졌다.
-디플레이션 탈출 공식 선언은 언제쯤 할까.
△구로다 총재는 벌써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불확실한 게 있다. 최근 엔화 강세가 우려되는 상황인데,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고 하면 금리를 빨리 정상화시켜야 하지 않냐는 신호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러울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은행은 양적완화 규모를 이미 줄이고 있다. ‘스텔스 테이퍼링(드러내지 않고 몰래 하는 양적완화 축소)’이라고 하는데, 명시적으로 축소한다고 말하지 못할 뿐이다.
◇과거의 소니가 아니다
-일본 경제 부활의 배경은 무엇인가.
△최근 세계 경기가 중요하다. 아베노믹스가 엔화 약세와 주가 상승으로 많이 좋아졌다가 소비세 인상으로 한 번 꺼졌고, 그 이후 세계 경제 회복으로 지난해 이후 회복되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양적완화로 엔화 약세를 유도해 수출이 증가한 효과가 있다. 또 산업정책 측면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법인세를 인하하고 기업하기 좋게 규제도 완화한 덕을 보고 있는 것이다.
-소니가 요즘 살아난다고 하는데.
△과거의 소니가 아니다. 예전처럼 TV사업도 하지만 비중이 높은 것은 반도체다. (디지털카메라 등을 주력으로 했던) 파나소닉도 이제는 배터리와 자동차전장이 중심이다. 미츠비시는 공장자동화기기 쪽을 강화하고 있다. 옛날에는 모든 기업이 똑같이 TV도 만드는 등 다 했는데, 이제는 자기 강점을 살려서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아베노믹스 세 개의 화살 중 무엇이 가장 의미가 있었나.
△엔저(低) 유도 정책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 기업의 투자와 구조개혁에 도움이 됐다. 장기성장 전략도 부분적으로 도움이 컸다.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다.
-듣고 보니 우리나라와는 반대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수출 증가를 위한) 원화 약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원화 가치가 크게 오르는 것은 방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기업의 활력을 저하시키는 정책이 너무 많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중요한 시점이다. 임금이 오르는 것은 좋지만 생산성에 맞게 올라야 한다. 고용으로 인해서 기업이 마이너스(-)가 되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시차를 두고 일본 경제를 따라간다는 분석이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15~20년 시차를 두고 굉장히 유사한 부분이 있다. 비슷한 건 인구 구조와 산업 패턴이다. 선진국을 추격할 때는 조금만 투자해도 생산성을 확 높일 수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스스로 개발해야 하니 한계가 있다. 이 단계에서 자국 통화가치가 강세를 보이기 쉽다. 본격 고령화 전에는 일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저축하기 쉽다. 그러면 국제수지는 흑자가 나오는데,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경쟁력이 있다고 오해를 한다. 일본은 당시 미국보다 생산성이 낮았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원화 강세를 용인해버리면 나중에 고령화 시대가 되면 쓸 돈이 없어진다. 우리나라는 과거 외환위기와 같은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인구구조상 벌면서도 돈을 안 쓰는 건 일본과 굉장히 비슷하다.
-그런데 요즘 환율 상황이 만만치 않다.
△현 시점에서 과거 플라자합의 같은 것은 쉽지 않다. 그 정도 압력이 되면 수출이 안 되니 제조업이 다 빠져나가거나, 혹은 망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서도 쌍둥이 적자(무역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통상만으로는 쌍둥이 적자를 막을 수 없으니, 우리나라를 향한 환율 압박은 계속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원화 강세를 방어해야 하는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도 환율을 방어하는 수단을 개발해야 한다. 현재 원화는 강세로 보고 있다. 원고(高)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장 참가자들에게 인식시킬 필요는 있다. 산업별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환율 레벨이 다르니, 안정되도록 체크해야 한다.
-‘환율 주권’이라는 말은 동의하는가
△동의한다. 우리나라처럼 소규모 개방경제는 큰 바다 위에 떠있는 나무조각 배라고 생각하면 된다. 큰 파도가 오면 언제든 휩쓸릴 수 있다. 이걸 방어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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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혁신경제 매진해야
-환율 외에 일본 기업의 개혁 노력은 어땠나.
△일본도 노조의 존재로 인해 아베 총리가 하려고 하는 개혁이 잘 안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이 변화한 부분도 있다. 조선산업을 보면 일부는 환경장비 쪽으로 변화하는 등 유연하게 바뀌었다.
-일본이야 말로 정년 보장의 대명사 아닌가.
△일본도 노조가 강성이다. 하지만 그래도 생산성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있다. 도요타 같은 경우는 공장 라인이 타이트해 생산성이 매우 높다. 생산성에 대한 노사간 합의는 매우 중요하다.
-일본에게 어떤 산업 대책을 배워야 하나.
△특단의 대책이라고 하면 결국 혁신 경제를 제대로 하는 것이다. 혁신적인 노동 관행을 정착시키고, 기술 주도형 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일단 산업 신진대사가 필요하다. 너무 오래된 기업이 살아 있으면 젊은 기업들이 올라올 수 없다. 게임처럼 성장하는 산업이 나와줘야 한다. 오래된 산업은 자기 나름의 혁신과 융합을 통해 자꾸 이런저런 시도를 해야 한다. 그렇게 진화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신진대사가 절실하다. 노동이든 산업이든 유연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현실화하는 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일본은 20년을 고생했으니 이제부터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2~3년 고생했는데 정신 차리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20년을 고민하면 우리나라는 망하는 길로 갈 거다. 빨리 혁신 경제 쪽으로 매진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