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개시 후 처음 열린 미국·일본·호주·인도 안보협의체(쿼드) 외교장관 회의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빠졌다. 그동안 예외 없이 들어가던 내용이 빠진 것이다. 이를 두고 북한의 핵 개발과 무장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국내외에서 확산되고 있다.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이번 회의는 미국의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공동성명에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했고, 이에 앞서 지난 14일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도 그렇게 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하기로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쿼드 성명의 ‘한반도 비핵화’ 누락 소식은 한반도 안보 환경에 중대 변화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갖게 한다.
물론 속단은 금물이고, 특히 안보 분야에서는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 미국 정부가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으로 곧바로 북한의 핵 보유를 공인한 것은 아직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모종의 직접 대화를 추진하기 위한 군불 때기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자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5개국만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틀을 벗어날 경우 부닥칠 후폭풍과 무질서는 트럼프 대통령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스몰딜’을 추진할 가능성은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무력화와 핵 개발의 기존 상태 동결을 대가로 교역 규제를 비롯한 각종 제재 조치를 풀어주는 방안이 미국 측에서 거론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이 한국을 제쳐놓고 북한과 직접 담판할 가능성도 있다. 탄핵 정국으로 정부 기능이 온전치 않다고 해서 안보 환경 급변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우리 입장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정치권도 초당적으로 협조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