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우기에 접어드는 미얀마…일단 목숨부터 살리자

정다슬 기자I 2021.05.11 06:00:00

미얀마 군부 쿠데타 100일째
시민들, 유혈진압과 배고픔에 일자리로 복귀하지만
민주주의 열망 꺾이지 않아 국제사회 외면말아야
韓1000억원대 ODA예산, 난민촌 건설 지원 고려해야

태국 국경 인근 미얀마 푸룬 지역 숲에 파놓은 구멍 안에 카렌족 어린아이가 숨어있다. 이 사진은 4월 4일 AFPTV에 익명의 소식통이 제공한 영상을 캡처한 것이다. 미얀마군이 미얀마 동부 샨주의 난민캠프를 공습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이들이 태국으로 피신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태국군은 이를 저지하면서 이들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AFP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11일(현지시간)은 미얀마 군부 쿠데타가 벌어진 지 100일이 되는 날이다. 지난 100일에 대한 평가와 향후 100일을 전망해보면 양쪽 모두 암담하기 그지없다.

그동안 미얀마 시민들이 공식 통계로만 800여명 가까이 사망했다.

그 중 한 명인 신한은행에서 일하던 미얀마 여성 노동자는 시위 참여자가 아니었다. 회사에 제공한 차량으로 퇴근하던 직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군부의 단속을 보고 위험을 감지한 기사가 방향을 틀었고 이를 본 군인은 총을 발사했다. 일각에서는 군인들 사이에 폭탄을 던지고 가는 차량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경위는 어찌됐든 무고한 시민이 죽었다.

미얀마 시민들의 머리를 조준 사격하는 군부를 비판하며 “혁명은 심장에 있다”라고 하던 저항시인은 심장을 포함한 장기가 모두 제거된 시신으로 돌아왔다.

◇미얀마 사태 100일…아직도 현재 진행형

이처럼 군부들의 무자비한 유혈 진압에 양곤 등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대부분 시위가 사라졌다고 한다. 사태가 100일 가까이 진행되면서 많은 이들이 먹고 사는 문제로 다시 일자리로 복귀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군부의 쿠데타가 성공했는가. 총칼과 먹고 사는 문제에 입을 다물고 있을 뿐, 미얀마 군부가 원하는 정통성 획득은 더욱 요원해졌다. 어떤 이들은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가입하고, 미얀마 군부에서도 탈영을 하는 이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여전히 미얀마 민주진영인 ‘국민통합정부’(NUG)와 소수민족과의 이해관계는 복잡하고 50만 군부의 군사력은 압도적이다.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미얀마 시민의 마음이다.

1962년 3월 독재자 네윈이 쇄국 정책을 선택한 이후, 미얀마 군부는 얼마나 국민을 ‘멍청하게’ 혹은 ‘무력하게’ 만들고자 노력했는가.

사회주의에 불교를 접목한 ‘버마식 사회주의’를 통해 “모두가 다 같이 가난(무소유)하면 행복하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고, 로힝야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차별화 정책으로 적을 외부로 돌렸다. 교육 시스템을 해체하고, 경제권을 군부가 장악했다.

그럼에도 꺾지 못한 시민의 불꽃이 88 항쟁과 샤프란 항쟁으로 나타나면 무자비한 총칼로 짓밟았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 국민은 아웅산 수찌 여사를 구심점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잊지 않았고, 결국 헌법 개정을 통한 민주주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이번 쿠데타 역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등에 대한 국민의 압도적 지지에 군부가 위협을 느껴 이뤄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군부 쿠데타에 시민불복종운동(CDM)이라는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나선 미얀마 시민의 의식 수준은 60여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단련된 것이다.

◇군대는 못 보내도 인도적 지원은 나서야

눈 앞에서 정부가 자국민을 800명 가까이 죽여도 아무일도 하지 못하는 무력한 국제사회가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미얀마 시민의 의식 수준과 의지를 믿고 이를 지지하는 것이다. (▷참고 : 5월 5일자 <미얀마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사)

이를 위해서는 먹고 살기 위해 군부에 굴종하는 일이 없도록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는 것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미얀마는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공무원 인력이 적지 않다. 이들이 CDM에 참여하려면 일단 국가에서 제공한 거주지부터 나가야 한다. 가족들이 있는 이라면 더욱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군대를 파견하는 것보다 훨씬 민주주의 동력을 잇는 지원일 수 있다.

미얀마 군부의 공습으로 부상을 입은 미얀마 난민 소녀가 3월 30일 태국 병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소녀는 미얀마 카렌주와 태국을 가로지르는 살윈 강을 통해 태국으로 들어왔다(사진=AFP)
국제사회의 지원이 시급한 이유는 또 있다. 미얀마는 5월부터 우기에 들어간다. 혹자는 ‘미얀마의 밀림’을 ‘혹한기의 산’에 비유한다. 군부의 탄압을 피해 밀림 속으로 몸을 숨긴 반군, 소수민족 주민의 안위가 우려된다.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지대에 국제사회의 힘을 모아 난민촌 등을 형성하면 당장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물론, 미얀마 시민에게 제3의 선택지도 줄 수 있다.

난민을 인접국인 태국에만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얀마 군부의 공습을 피해 태국으로 넘어온 난민을 군인을 통해 쫓아내는 태국 정부의 행동을 우리가 마냥 비난할 수 있는가. 남의 일이라고 방관하거나 비난만 하지 말고 국제사회가 힘과 돈을 모아 함께 지원한다면 태국 역시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우리 정부는 3월 15일 미얀마 쿠데타와 민주주의 운동 이후 신속하게 반응하며 미얀마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얀마에 제공된 정부의 ODA는 유·무상을 합쳐 2019년 기준 약 9000만달러(1000억원), 2020년에는 1억 1000만규모(1230억원)다. 코로나19와 미얀마 사태로 당장 쓰기 어려운 불용(不用) 예산도 적지 않다.

이같은 예산을 미얀마 난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으로 돌리고 국제사회에 동참을 주도한다면 어떨까. 미얀마 사태는 우리나라가 국제 외교에서 이니셔티브를 쥘 기회이기도 하다.

진짜 명예와 우정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도, 혹은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도울 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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