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55). 한국 뮤지컬을 대표하는 음악감독으로 대중에게 인상 깊게 남아 있다. 2009~2010년 KBS2 인기 예능프로그램이었던 ‘남자의 자격’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던 ‘남격합창단’에서 음악감독을 맡으면서다. 오랜 기간 뮤지컬 음악감독 겸 연출가로 익숙했던 박칼린이 자리를 무대 위로 바꿨다. 오랜만에 뮤지컬 주연 배우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개막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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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칼린은 최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가진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어쩌다 보니 음악감독과 연출이 주로 하는 일이 됐는데, 원래 어릴 때부터 연기도 했고 연극 무대에도 틈틈이 섰다”며 배우로서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넥스트 투 노멀’은 작품 자체로 완벽해서 배우로서 욕심이 났다”고 밝혔다.
박칼린이 생각하는 연출가는 작품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출을 맡게 되면 배우에게는 오로지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남자의 자격’에서 보여준 카리스마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리더십은 이러한 박칼린 연출 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는 “작품의 흥행을 책임지는 것은 오로지 제작진의 몫이기에 배우는 그런 책임감을 느끼며 작품을 준비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출가가 배우를 하게 되면 연출가의 일에 개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칼린은 배우가 될 땐 철저하게 배우 본연의 자세에 집중한다. “연습할 때 연출가로서의 내 모습이 나올 때도 없진 않지만, 배우와 연출가의 역할을 최대한 분리해서 작품에 임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칼린은 “이번 ‘넥스트 투 노멀’에서도 나는 배우로서의 역할만 충실히 하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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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투 노멀’은 극작가 겸 작사가 브라이언 요키와 작곡가 톰킷의 작품으로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했다. 양극성 장애를 지닌 엄마 다이애나를 중심으로 딸 나탈리, 남편 댄, 아들 게이브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질환과 가족 간의 소통 문제를 다룬다.
박칼린이 10년 넘게 이 작품에 배우로서 애정을 담아온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먼저 이 작품을 보고 국내 뮤지컬계에 소개한 이가 바로 박칼린이기 때문이다. 그는 1막이 끝나자마자 극장을 뛰쳐나와 국내 뮤지컬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작품을 사가라”고 추천했다. 음악·무대·의상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작품 다운 작품’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이 작품으로 치유를 받을 수 있다면 계속 이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넥스트 투 노멀’은 정신질환을 다루지만, 이를 무겁지 않게 유머를 잘 활용해 풀어내고 있어요. 이제는 한국에서도 정신질환은 더 이상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겼죠. 국내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은 대부분 이 작품을 안다고 해요. 네 번째 시즌을 맞아 관객도 더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넥스트 투 노멀’의 가치가 있어요.”
연출가로서 창작 프로젝트도 꾸준히 구상 중이다. 세습무와 강신무로 나뉘는 한국 무속을 소재로 한 퍼포먼스 공연 ‘페이퍼 샤먼’(가제), 한국 역사 속 주요 여성 인물을 재조명하는 ‘쉬스타즈’(she-stars) 등 한국적인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제작사들이 뮤지컬로 돈을 벌면 그 돈의 20~30%는 창작하는데 쓰는 일종의 룰이 생기면 좋겠어요. 창작하는 사람은 마음껏 창작할 수 있게 해줘야 뮤지컬도 발전할 수 있거든요. 정부도 뮤지컬을 제약 없이 제대로 지원해준다면 한국 뮤지컬도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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