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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카는 보행이 불편한 노인이 손잡이를 잡고 밀면서 이동할 수 있게 돕는 기구로, 내부에는 장바구니나 간이 의자가 함께 달려 있어 외출 중 짐을 실을 수 있고, 피곤할 때 앉아 쉴 수도 있다. 기능적으로는 작고 단순해 보이지만, 실버카는 노인들에게 ‘밖으로 나가는 자유’, 즉 노인들의 이동권을 제공하는 필수 도구이다. 그러나 그 소중한 자유를 떠받치는 이 실버카에 대해 우리나라의 법적·제도적 지원은 놀랄 만큼 부족하다.
현재 실버카는 장애인 보조기기처럼 보건복지부의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한다. 장애인·노인 등을 위한 보조기기 지원법에도 실버카는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고 있다. 의료기기나 재활보조기기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건강보험 적용도 되지 않으며, 장애인에게 적용되는 기기 보조금과 같은 지원 제도 역시 노인 실버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실버카는 국가통계에도 제대로 잡히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기기이다.
그렇다고 필요성이 적은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도리어 고령층의 건강 문제와 맞물려 실버카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낙상은 노인의 대표적인 사고 원인 중 하나이며, 한 번의 낙상이 회복 불가능한 건강 저하로 이어지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버카는 단순한 보행 보조를 넘어서 노인의 존엄과 자립을 지키는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그런데도 공공은 아직 실버카를 ‘개인의 소비재’ 정도로만 취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제도 공백 속에서도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종시와 전라북도 등 일부 지자체는 자체 조례를 제정해 보행보조기기, 즉 실버카의 구입을 지원하거나 무료 대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의 일부 구청(광진, 도봉, 중랑, 서대문구)에서도 경로당이나 복지관을 통해 실버카를 일정 기간 무상 대여해주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지자체 중심의 정책은 국가 제도의 공백을 메우는 실질적인 대안이 되고 있으며, 그 범위와 지속성이 더욱 확대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노인의 보행권, 이동권을 헌법적 권리로 인식해야 할 시점이다. 이동권은 헌법 제10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 해당한다.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닌, 사회 참여의 권리, 외출의 자유,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자율성이 걸린 문제이다. 실버카는 바로 그러한 이동권을 실현시키는 실질적인 수단이며, 그에 대한 공공적 책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보도 위 단차, 비탈길, 턱에 걸려 실버카가 멈추는 순간, 노인의 이동권 역시 멈춰 서게 된다. 이동권이 멈추면 노인의 인간다운 삶도 그곳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국가는 실버카를 법적·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실버카를 국가인증 제품으로 관리하고, 노인 보행보조기기로 공식 분류하며, 건강보험이나 복지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의 법제화가 필요하다. 지자체 역시 조례 제정과 예산 편성을 통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더 나아가 실버카 사용자들을 위한 안전 교육, 사용자 맞춤형 제품 보급, 보행 친화적 도시 설계 등 전방위적인 접근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실버카가 제때 제동이 걸리고 손잡이 조절도 쉬워야 하므로 품질보증도 있어야 한다.
고령 사회는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다. 노인들의 이동을 돕는 작은 실버카 하나가 ‘걷고 싶은 삶’, ‘밖으로 나아가는 권리’를 실현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인간다운 삶은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동할 수 있어야, 진정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자율성과 존엄을 지켜내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공공의 이름으로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과제가 아닐까.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