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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 휴대폰에 기록된 마약거래, 처벌하진 못했다…왜?

성주원 기자I 2025.01.26 09:05:00

분실물 신고가 마약 수사로…증거능력 논란까지
압색영장 없이 진행된 수사…1심 무죄→2심 유죄
대법 "위법한 증거로 얻은 자백, 증거능력 없어"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한밤중 택시 뒷좌석에 놓인 휴대전화 한 대. 양심적인 한 택시기사의 분실물 신고로 사건이 시작됐다. 이후 마약 거래를 둘러싼 수사와 재판으로 이어졌다.

사진=미드저니
2023년 8월 8일 아침, 대전의 한 택시기사는 뒷좌석에서 전날 탑승했던 손님이 떨어뜨린 것으로 보이는 휴대전화를 발견했다. 기사는 같은 날 오전 이 휴대전화를 대전의 한 파출소에 습득물로 제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분실물이라 여겨졌다.

하지만 상황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파출소의 경찰관이 휴대전화 소유자를 확인하기 위해 화면을 켠 순간,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의심스러운 대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소금 모양의 프로필 사진을 가진 계정과 마약 은어로 추정되는 대화명. 경찰관의 직감이 움직였다.

경찰은 휴대전화를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텔레그램과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술’(필로폰의 은어), ‘브액’(합성대마의 은어) 등 마약 거래를 암시하는 대화들이 발견됐다. 파출소는 곧바로 이 휴대전화를 경찰서 형사과로 넘겼고,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형사들은 휴대전화에서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8월 10일 오전, 첫 용의자를 긴급체포했다. A씨는 마침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A씨 차량에 실린 이삿짐 상자에서는 주사기 41개와 액상 카트리지 11개가 발견됐다. 이어진 수사에서 또 다른 용의자 B씨도 특정됐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할 때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지 않았고, 피의자에게 참여 기회도 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재판 과정에서 핵심 쟁점이 됐다.

1심 재판부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고인들이 법정에서 자백한 점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고, 결국 대법원은 “위법한 수사로 얻은 증거에 기초한 법정 자백도 증거능력이 없다”며 지난 9일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평범한 분실물 처리로 시작된 이 사건은, 결국 수사기관의 적법 절차 준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판례가 됐다. 마약 사건을 해결하려는 수사기관의 의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는다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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