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정부에서 책임총리가 구현된 사례는 드물었다. 그나마 김대중 정부의 김종필 전 총리가 가장 가까웠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는 대선 승리를 함께 이뤄낸 ‘DJP연합’(김대중-김종필)이 약속된 권력 분배를 이행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김영삼 정부의 이회창 전 총리는 책임총리를 표방하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끝에 4개월만에 자진 사퇴했다. 노무현 정부의 이해찬 전 총리는 ‘실세 총리’로 통했으나 집권 여당 내 총리였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의 책임총리는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도 공약이었던 책임총리제를 실현하지 못했다. 정홍원·황교안 전 총리 모두 관리형 총리 성격이 강했다.
책임총리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대표적 이유로 임명직이라는 한계가 꼽힌다. 각료 추천권·해임건의권·국무위원 통할권 등 헌법에 명시된 총리 권한을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뜻에 반해 실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정 운영의 실제 권한을 손에 쥔 대통령이 행정부 2인자의 견제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드물었다. 이런 환경 속 ‘의전’ ‘대독’ ‘바지’ 등은 총리의 앞에 붙는 흔한 수식어가 됐다. 장관들 역시 실·국장 인사조차 청와대 눈치를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한이 약화된 상태다.
사실상 정치적 레토릭에 가까운 제도들인 만큼, 이를 실현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다만 과거 1987년 직선제 도입 이래 어떤 정부도 가지 못했던 길이었다. 최근엔 여야가 합의한 인물을 총리로 임명하는 ‘국회 추천’ 책임총리제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이 의회를 존중하게 만들면서도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갈등을 최소화할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 의석 수 구성 비율로 여야 대립이 극대화되는 정국에서는 이마저도 어려움이 따랐다.
결국 관건은 윤 당선인의 권력 분산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와 더불어 향후 인사 과정에서 이를 충실히 실천하는데에 달렸다. 윤 당선인은 지난달 한덕수 총리 후보자 지명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대통령과 총리·장관·차관 같은 주요 공직자가 함께 일하고 책임지는 구조”라며 “자기가 함께 일할 사람을 선발하는 문제에서는 장관의 의견을 가장 중시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상 총리의 장관 제청과 장관의 차관 추천 등 실질적 인사권을 첫단추다. 향후 구체적인 대통령 권한 위임 논의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