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궁도 발길 끊었는데…계엄·탄핵 정국 ‘핵폭탄’
29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준 국내 면세업계의 총 매출액은 1조 14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조 1553억원)와 비교해 12.1% 감소한 수치다. 업계의 장기 불황은 연 매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국내 면세업계는 총 13조 7585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던 2020년(15조 5051억원)보다 11.3% 줄어든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24조 8586억원)과 비교하면 반 토막 난 수준이다.
이런 따이궁의 매출 감소를 상쇄할 유커(단체관광객) 규모도 감소세다. 중국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싼커(개별여행객) 비중이 늘고 있어서다. 20·30세대가 주축인 이들은 면세점보다 올리브영, 다이소 등 현지 소비 채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계엄·탄핵 정국이라는 대형 악재가 터진 셈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환율이 치솟고 있다.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27일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기준 1467.5원으로 마감했다. 전날 대비 2.7원이 올랐다. 환율이 1460원을 넘어선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6일(1488.0원) 이후 처음이다. 면세점은 달러 기준으로 거래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제품 가격이 오르는 구조다. 가격 경쟁력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혼란한 정치 상황에 방한 외국인 타격도 예상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한국에 대해 여행 주의보를 발령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국가는 한국 여행 자제를 당부한 상황이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업체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는 최근 분석 보고서를 통해 내년 1분기 한국 방문 중국인 관광객이 전년 동기대비 19% 줄어든 83만명이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 매출은 국내 면세점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10월 기준 면세점 외국인 고객의 매출은 8492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76%로 나타났다.
◇먹구름만 가득한 미래…제 살 깎는 것도 이젠 한계
|
면세점들은 각자 비용 감축에 주력하며 버티기에 나서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 6월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8월에는 희망퇴직도 진행했다. 최근 정기 임원 인사에서 수장을 교체하는가 하면 명동의 홍보관인 ‘나우인명동’ 사업 철수도 결정했다.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신세계DF)도 지난달 5년 이상 근속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신라면세점을 운영 중인 호텔신라는 올해 하반기 창사 이래 처음으로 1328억원의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제 살을 깎는 환율 보상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거나 행사 카드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롯데면세점은 명동 본점, 월드타워점, 부산점, 제주점에서 내국인 회원에게 최대 124만원까지 환급하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신세계면세점도 환율 보상 이벤트로 온라인몰에서 50달러 이상 결제하면 사용할 수 있는 15% 쿠폰을 주고 있다. 신라면세점도 환율 보상 프로모션으로 더블 적립금과 추가 혜택 적립금을 제공 중이다.
기준환율도 계속 인상 중이다. 앞서 면세점업계는 지난 5월 기준환율을 1300원에서 1350원으로 올린 데 이어 지난주 1400원으로 또 인상했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넘게 되면 기준환율 추가 인상 압박도 커질 수 있다. 이는 국내 브랜드 상품의 정상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어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지만, 면세점 마진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다.
정부도 면세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면세점 특허수수료를 50% 감면키로 했다. 특허수수료는 면세점의 사회적 기여를 위해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징수하는 제도다. 업계는 연간 400억원 가량을 이 비용으로 사용해왔다. 정부는 또 해외에서 휴대 반입하는 면세 주류와 관련해 ‘총량 2ℓ’, ‘총 400달러 이하’라는 상한선은 유지하면서 현행 2병인 반입 병수 제한은 폐지했다.
다만 업계는 업황을 반전시키기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고환율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 정도 대책만으로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다. 환율보상 프로그램 등 자구책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지금은 환율이 낮을 당시 매입한 상품의 마진을 줄이면서 버티고 있지만 이 이상은 힘들다는 게 업계의 호소다.
면세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국 경기 침체와 고환율 등 자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악재들이 업계를 위협하는 상황”이라며 “현 상황이 수개월 이상 지속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