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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멀게만 느껴지는 라스팔마스에 청록파 박목월 시인의 추모시가 있다. “땅의 끝 망망대해 푸른 파도 속에 자취 없이 사라져 갔지만 우리는 그들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라스팔마스 시립묘지에 있는 추모시의 일부인데 시인이 그토록 허망해한 그들은 도대체 누구일까. 아는 사람만 아는, 결코 짧지 않은 이야기다.
1950년 3월 17일 대한민국과 스페인은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 이후 우리 정부는 1966년 전략적으로 과거 콜럼버스가 이용했던 라스팔마스에 한국수산개발공사 기지를 개설하게 된다. 이로써 당시 250척이 넘는 한국 원양어선이 서아프리카 대서양해역에서 조업하는 등 양국 관계는 실질적인 관계로 급진전했다. 교민사회도 그 수가 1만 명을 넘어 라스팔마스뿐만 아니라 테네리페 등 인근 섬으로까지 거주 지역이 확대하면서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 내 최대 동포사회 중 하나로 성장했다.
당시 고국은 경제발전을 위한 자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였다. 라스팔마스에 파견된 선원들은 이에 부응하여 외화를 송금했고 이는 조국의 경제발전과 근대화에 긴요한 초석이 됐다. 한국원양산업협회에 따르면 이들이 20년(1966~1987)간 고국으로 송금한 금액은 8억7000만달러에 달한다. 이에 따라 한국 원양어업은 1971년 당시 한국 수출액의 5%를 차지하는 등 한국이 세계 5위권의 원양어업 대국으로 발전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열악한 조업환경 속에서 목숨을 담보로 한 선원들의 희생 또한 매우 컸다. 박목월 시인의 헌사는 이렇게 이역만리 타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라스팔마스에 안치된 선원 117명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시인은 조국의 경제발전과 근대화에 큰 역할을 담당한 이가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뿐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올해는 한-스페인 수교 75주년이며 내년은 한국인들의 카나리아제도 정착 6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동포들의 염원이 담긴 조각상 ‘그리팅맨’(Greeting Man) 설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이 조형물은 양국 간 우정을 상징하게 될 것이다. 원양어업에 종사하다 유명을 달리한 선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남아 있는 한인사회에는 또 다른 60년을 이어갈 자부심으로 남게 될 것이다.
콜럼버스가 라스팔마스를 지나 신대륙으로 향했듯 우리 원양어선 선원들도 새로운 기회와 조국의 경제적 발전을 위해 라스팔마스를 찾아왔다. 그리고 오늘날 카나리아제도의 한인 동포들은 지난 60년간 수많은 도전과 변화를 이겨내고 한-스페인 양국 관계의 중요한 역사적 연결고리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 우리 원양선원이 카나리아섬에서 역경과 시련을 감내하며 조국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역사적 사실이 잊히지 않고 기억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