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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전문가는 지고 고수가 뜬다 [김현아의 IT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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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기자I 2026.11.01 09: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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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낮춘 전문성의 문턱…달라지는 인재의 조건
문제 찾고 결과 만드는 ‘울퉁불퉁한 고수’가 경쟁력
긱블·아스테로모프의 도전…SK아이젠은 실행력
학벌·경력의 낡은 잣대 넘어 새로운 가능성 봐야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우리는 오랫동안 전문가를 우대하는 사회에 살았다. 얼마나 공부했는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한 분야에서 얼마나 오래 경험을 쌓았는지가 능력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이었다. 지식이라는 거대한 산을 수십 년간 올라 정상에 도달한 사람이 전문가였다.

하지만 인공지능(AI), 특히 스스로 작업을 이어가는 에이전틱 AI의 등장은 이 질서를 흔들고 있다. 과거에는 오랜 공부와 경험이 필요했던 일들을 이제 AI의 도움으로 훨씬 빠르게 해낼 수 있다. 전문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성을 갖추는 방법과 이를 활용하는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AI 시대, 전문가는 지고 고수가 뜬다 [김현아의 IT세상읽기]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박현우 교수는 최근 SK 청년 인재 육성 프로그램 ‘SK아이젠(AIGEN)’ 설명회에서 AI 시대에는 정형화된 전문가보다 새로운 기술과 기회를 남보다 먼저 발견하고 활용하는 ‘울퉁불퉁한 고수’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AI가 지능을 수돗물처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면서 사람의 경쟁력도 달라진다. AI가 만든 그럴듯한 결과물을 자신이 원하는 완성도로 끌어올리는 능력이다. 박 교수는 AI가 결과물의 60~70%까지는 빠르게 만들어내지만, 나머지를 완성하려면 무엇이 좋은지 판단하는 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미켈란젤로의 조각에 빗댔다. AI는 누구에게나 미켈란젤로의 ‘손’을 쥐여줄 수 있지만,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까지 주지는 않는다. 그 눈은 호기심과 취향, 자기만의 문제의식에서 나온다.

왼쪽부터 데니스홍 루드다이나믹스 CSO, 박찬후 루드다이나믹스 CEO, 이세형 루드다이나믹스 사업총괄 이사/루드리서치 헤드. 사진=루드다이나믹스
왼쪽부터 데니스홍 루드다이나믹스 CSO, 박찬후 루드다이나믹스 CEO, 이세형 루드다이나믹스 사업총괄 이사/루드리서치 헤드. 사진=루드다이나믹스
로봇 직접 만들기보다 소프트웨어로 승부…긱블의 역발상

구독자 130만명 이상의 과학·공학 유튜브 채널 ‘긱블’을 운영하는 루드다이나믹스의 박찬후 대표(30)가 추진하는 로봇 사업은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이 회사는 로봇을 직접 제조하는 대신 기존 기체에 자체 소프트웨어를 결합하는 전략을 택했다. 액추에이터(구동장치)가 로봇 원가의 약 70%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직접 기체를 개발하면 부품 가격 부담과 개발비가 큰 만큼, 자체 하드웨어 개발에 자금을 쏟기보다 이미 시장에 나온 로봇을 활용하는 편이 경제적이라는 판단이다. 액추에이터 가격이 충분히 낮아지면 자체 기체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대신 운영 플랫폼 ‘록스(LOX)’와 캐릭터 에이전트 ‘루카(LUCA)’를 개발해 다양한 로봇에 적용한다. 중국 하이토크 로보틱스의 소형 로봇에 적용한 데 이어 유니트리 등으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10년간 쌓은 콘텐츠 제작 경험이 차별점이다. 로봇이 넘어지면 고장으로 숨기는 대신 “나 좀 일으켜줘”라고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캐릭터로 바꿨다. 하드웨어 성능 경쟁에만 매달리기보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결합해 새로운 고객 경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잘하는 영역을 찾아 기존 로봇 산업의 경쟁 방식을 바꿔보려는 시도다.

이민형 아스테로모프 대표. 사진=아스테로모프
이민형 아스테로모프 대표. 사진=아스테로모프
새로운 경로를 의심하는 레거시의 낡은 잣대

반면 기성 문법에서 벗어난 인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낡은 기준에 머물러 있다.

과학 AI 스타트업 아스테로모프 이민형 대표(25)를 둘러싼 학력·경력 논란이 그렇다. 2001년생인 이 대표는 검정고시를 거쳐 독학학위제와 학점은행제로 컴퓨터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만 16세 때 서울대 의대 산하 연구소에서 일했고, 현재 서울대 의과대학 대학원 의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에 재학 중이다.

의과학과는 의사 면허 취득을 위한 의학과 학부 과정과 다른 연구 중심 대학원 과정이다. 이 대표의 대학원 입학과 연구소 근무 이력은 관련 증빙자료로 확인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K-문샷 프로젝트 프로그램 디렉터(PD) 지원 당시 제출된 학력·경력 서류에 문제가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의혹 제기는 계속됐다. 이 대표 측은 재학증명서와 경력증명서 등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이의를 신청하면서 사건은 검찰에 송치됐다. 형사 책임 여부는 향후 수사와 사법적 판단을 통해 가려질 사안이다.

공적인 역할을 맡은 인물의 이력 검증은 필요하다. 하지만 검증과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다르다. 정규 교육의 정해진 경로를 밟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례적인 이력을 의심하고, 학력과 경력만으로 가능성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이 대표가 이끄는 아스테로모프는 기존 AI 모델에 과학 문제 해결을 위한 추론 기술을 결합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450억원 규모의 시드 투자도 유치했다. 기업의 기술력과 사업 성과는 별도로 검증받아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경로로 과학 난제에 도전하는 청년 창업가를 과거의 학력과 경력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AI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박상규 SK mySUNI 총장 겸 SK그룹 인재육성위원장이 9월 28일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사전 설명회에서 SK아이젠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박상규 SK mySUNI 총장 겸 SK그룹 인재육성위원장이 9월 28일 한국고등교육재단에서 열린 사전 설명회에서 SK아이젠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스펙 대신 ‘야생의 근육’을 묻는 SK아이젠

산업계에서는 인재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11월 1일부터 지원 접수를 시작한 SK그룹의 청년 인재 육성 프로그램 ‘SK아이젠’이다.

SK는 2027년 3월 기준 만 19~34세 청년 50명 안팎을 선발해 약 22개월간 AI를 활용한 문제 해결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지원한다. 참여자에게는 매월 300만원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학점과 자격증, 완성된 아이디어는 물론 AI 전공 여부도 필수 조건이 아니다. 학위나 대기업 취업도 보장하지 않는다.

박상규 SK mySUNI 총장은 설명회에서 “안정적인 대기업 취업을 원한다면 아이젠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기보다 평소 궁금했던 문제를 직접 파고들고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프로그램이라는 뜻이다.

선발 기준은 호기심과 문제의식, 실행력이다. 창업·기술뿐 아니라 문화예술과 스포츠, 사회문제까지 각자의 관심 분야에서 문제를 찾고 AI로 해결책을 만들어보도록 한다. 박 교수의 조언처럼 AI에 정답을 묻고 끝내는 대신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고, AI를 활용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지식의 거대한 산을 오르는 노력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산에 오르는 길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AI를 활용해 낯선 분야에 뛰어들고, 문제를 새롭게 정의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산업의 판을 바꾸고 있다.

청년들은 액추에이터 원가를 따져 로봇 사업의 방향을 바꾸고, 기존 교육 경로를 벗어나 과학 AI에 도전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낡은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에 나설 기회다.

AI 시대의 인재는 가장 많은 지식을 쌓은 사람이 아니다. AI와 손잡고 남들이 보지 못한 문제를 발견해 자신만의 답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미켈란젤로의 손을 쥐었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만들지 알아보는 눈이다. 그 눈은 직접 부딪치고 실패하며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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