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실업급여'는 그림의 떡…고용보험 없으니 빚의 악순환

장병호 기자I 2020.05.07 05:29:50

[미룰 수 없는 예술인 고용보험]①
사회안전망 취약한 문화예술계
코로나로 상반기 공연 줄취소됐지만
실직기간 동안 생활안정 혜택 전무
"예술인도 사회안전망 보호 받아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연극인 A씨는 상반기 준비했던 공연들이 코로나19로 연이어 취소돼 수입이 확 줄어들었다. 코로나19로 실업급여 신청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만 A씨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A씨는 “지금 상황에서 ‘예술인 고용보험’이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였을 텐데 지금은 빚을 빚으로 메우는 악순환의 지원책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화예술계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공연 취소 등 문화예술계 피해가 이어지면서 당장 생계부터 걱정해야 하는 예술인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국정과제로 ‘예술인 고용보험’을 추진해 왔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다.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은 “예술인 고용보험이 적용됐다면 코로나19로 인한 문화예술계 피해를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인 고용보험 추진 경과. 사진은 문화예술노동연대가 지난해 9월 23일 국회 앞에서 개최한 ‘특고·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법률안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현장(디자인=이미나 기자).


◇“예술인 고용보험은 안정적 창작활동 위한 제도”

예술인 고용보험은 예술인도 실직기간 동안 생활 안정을 위한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도입되면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하지 않는 기간 또는 연습 기간을 일종의 실업 상태로 간주해 실업급여 형태로 생활 자금을 지원 받게 된다. 오경미 사무국장은 “예술인 고용보험은 고용 불안정을 겪고 있는 예술인의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예술인 고용보험의 필요성은 문화예술계 코로나19 피해 지원현황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코로나19 피해 예술인을 위해 30억 원 규모로 신설한 ‘예술인 긴급생활안정자금 특별 융자’는 지난 3월 접수를 받자마자 빠르게 마감됐다. 총 355건을 지원했다. 4월에는 40억 원을 증액해 지원했는데 2배가 넘는 885건이 접수돼 현재 심의 중이다. 코로나19 피해 예술인에 대한 가점 부여를 적용한 ‘창작준비금 지원사업’도 올 상반기 6000명 대상자를 선발하는데 2배가 훨씬 넘는 1만 4803명이 지원했다.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 혜택을 받지 못하고 생계 위기에 내몰린 예술인들의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남희승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회보험팀장은 “일하는 사람의 실업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인 고용보험 제도의 운영 안정성은 창작준비금과 같은 단일 정책사업과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남 팀장은 “코로나19와 같은 사태가 또 다시 발생했을 때 예술인이 고용보험 같은 예측 가능한 제도로 보호받는다면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기반에서 작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며 “예술인 고용보험은 예술인을 보편적 사회안전망에 편입시키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보험법 개정안 통과 안될 땐 이달말 폐기 위기

고용보험은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과 함께 국민의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위한 4대 보험 중 하나다. 현재는 임금노동자나 자영업자에 한해서만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프리랜서 비중이 높은 예술인은 다른 분야에 비해 사회안전망의 적용을 받기 힘든 현실이다. 문체부가 지난해 4월 발표한 ‘2018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업 예술인 중 프리랜서 비율은 76%에 달했다.

예술인 고용보험에 대한 논의는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된 지난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화예술계는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계기로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위한 사회안전망으로서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을 요구해왔다.

정부가 추진 중인 예술인 고용보험은 예술인 누구나 적용받을 수 있는 당연가입 방식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예술인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명시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지난 2018년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돼있는 상태다. 그러나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20대 국회가 끝나는 오는 5월 29일 이후 폐기될 위기에 처해 있다.

문화예술노동연대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연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다. 오 사무국장은 “예술인이 예술활동으로 받는 보상금은 물론 겸업을 하며 버는 수익에서도 세금이 나간다”며 “예술인도 다른 국민처럼 똑같이 납세 의무를 지고 있는 만큼 이에 따른 마땅한 권리로서 예술인 고용보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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