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에 이어 또 리더십 공백 ‘데자뷰’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을 앞둔 현 정국은 8년 전인 2016년 말 트럼프 1기 정부 출범 때와 흡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해 11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고, 우리는 한 달 뒤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 돌입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관세를 무기 삼은 트럼프식 통상 압력에 초기 대응할 시점을 놓쳤다는 지적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차기 문재인 정부는 다음해 5월 출범부터 트럼프 1기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공세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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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상·하원까지 장악한 트럼프 2기 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10~20% 보편 관세 등 더 강력한 압박을 예고하고 있어 트럼프 1기보다 더 철저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에서 맞는 공백이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여한구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1기 때의 정치적 격변기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며 “트럼프 2기 정부의 속도전을 따라가려면 초반에 잘 대응해야 하는데 리더십이 없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정상급 외교는 이미 ‘올스톱’ 상태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최근 방한 일정을 취소했고, 내달 방한 예정이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첫 방한 일정 논의도 멈춰 섰다. 한·미 정상회담 시점도 현 시점에선 언제 열릴지 알 수 없다. 외교부 1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내 정치적 상황이 정상화하기 전까지 국제사회에서 ‘시팅 덕’(Sitting-duck, 이용당하기 쉬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측 가능성 커져…민·관 똘똘 뭉쳐 대응해야”
한편에서는 우리 정부·기업이 트럼프의 당선 자체를 예측 못 한 8년 전과 달리 트럼프와 그 통상 측근에 대한 어느 정도 네트워크를 갖췄다는 점은 다행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통상 당국은 앞선 한 달여간 이를 토대로 주요기업과 논의를 거쳐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인교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0일에도 통상·국제관계 전문가 12명과 함께 트럼프식 ‘거래적 접근(transactional approach)’ 대응책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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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도 “여러 우려가 있지만 기획재정부와 산업부 등 정부의 경제 라인은 여전히 작동하는 중”이라며 “기업이 앞장서고 정부가 지원하는 ‘원 팀’ 체제를 공고히 한다면 올 연말과 내년 초 다가올 변수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당국이 차기 유력 대권 주자의 정책 방향까지 고려해 미국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조기 퇴진이든 탄핵이든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4~5개월의 리더십 부재는 불가피하다”며 “미국과의 대화 과정에서 야당의 유력 지도자가 평소 주장해 왔던 내용까지 고려해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이런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는 우리의 정책 일관성을 설득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