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여성 최초’ 수식어를 달고 한국패션산업협회 회장에 취임한 지 1년을 맞은 성래은 영원무역홀딩스(009970) 대표(부회장)는 최근 이데일리와 만나 “(협회장 임기를 마칠 땐) 많은 걸 나눴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지난 1년 동안의 성과 중 하나로도 ‘네트워크 이식’을 꼽았다.
실제 성 회장은 협회를 이끌게 된 후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을 찾아가 협회에 관심 둬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지난해 6월 협회와 현대백화점 간 ‘지속 가능한 K패션 육성에 관한 업무협약’(MOU)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신세계그룹 소속 벤처캐피털(VC)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 물류기업 한진, 글로벌 액셀러레이터(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굴 및 육성하는 기관) 스파크랩 등과의 MOU 역시 성 회장 취임 이후 성사됐다.
성 회장은 “MOU 체결 후 한진의 물류를 통해 많은 브랜드가 더 저렴한 비용으로 뉴욕 코트리(COTERIE·국제의류박람회)와 상하이 전시회에 참가했고, 한 패션기업이 스파크랩으로부터 투자 컨설팅을 받는 등 가시적 성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저의 글로벌 사업 경험과 네트워크를 협회 사업에 잘 녹여내 K패션 이륙에 더 큰 동력이 되고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
|
-지금 국내 패션산업에서 가장 주목하는 변화는 무엇인가.
△멘토링할 때 젊은 친구가 자기 브랜드를 만들겠다면서 조언을 구했다. 창업은 자신의 모든 걸 걸어야 해 쉬운 도전이 아님에도 패션산업에서 창업이 활발해지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감사하게도 새로운 브랜드의 등용문을 자처하는 무신사, 에이블리, W컨셉 등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 있어 이 같은 도전이 가능한 것 아닌가 싶다. 브랜드를 키워내는 플레이어 시장이 더 확대되도록 협회는 백화점협회와 밀접하게 일하는 동시에 시그나이트파트너스·스파크랩 등 투자 전문사와 협약을 맺고 브랜드가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협회는 국내 패션산업이 세계 상위 5위권에 진입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K패션의 강점은 무엇인가.
△수십 년 동안 패션산업 ‘톱4’는 프랑스·이탈리아·영국·미국에서 바뀌지 않았다. 패션은 개인을 나타내는 수단이어서 소비자가 까다롭게 선택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패션은 럭셔리함, 미국 패션은 실용성으로 각각 인식된다면 한국 패션은 아직 하나의 색깔로 규정하기 어려운, 다양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매스미디어 시대엔 획일적 유행을 따라갔지만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시대로 넘어오면서 개인 취향이 반영되는 패션을 선택한다. 워낙 소비자 수요가 다양하고 소비자 개개인이 각자의 유니크함을 표현하려 하는데 다양성을 갖춘 K패션이 그 답을 갖고 있다고 본다.
-K패션은 글로벌 톱5로서의 위상이 어느 정도 가시화했나.
△지금 세계 모든 브랜드의 테스트베드가 한국이다. 스포츠웨어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여러 브랜드의 큰 숙제는 한국 소비자에게 어떻게 선택받을 수 있을지가 됐다. 한국 소비자의 위상이 높아진다는 건 결국 앞으로 국내 브랜드도 충분히 기회가 올 것이란 의미로 본다.
-K패션이 세계로 진출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K뷰티나 K푸드는 대기업 위주로 자본력이 탄탄하고 생산도 규모 있게 이뤄지는 데 비해 K패션은 강소 브랜드가 주축이다 보니 세계 시장에서 마케팅 등을 진행하기엔 자본 투입 역량 등에서 어려움이 있다. 협회 차원에서 브랜드가 어떻게 하면 투자 여력이 생길 수 있도록 도울지, 성장 단계별로 어떻게 조언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K패션이 세계 시장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필요한 게 있다면.
△성장하려면 기본기가 탄탄해야 한다. K패션에 독창성이 있거나 좋은 스토리텔링을 가진 디자이너가 있더라도 결국 제품을 제조해 시장에 낼 수 있어야 한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의류 플랫폼이 유통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플랫폼에서의 소비자 반응을 보고 생산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K패션이 도약하려면 국내에도 생산 능력을 뒷받침할 만한 의류제조기업이 필수조건이 됐다. 이와 관련해 협회가 국고보조사업으로 6년 동안 의류 시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전문 샘플사·패턴사 200여명을 배출했다. 브랜드가 반응 생산하는 기본은 샘플 개발 능력인데 이들은 의류 개발과 다품종 신속생산의 중심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무형문화재처럼 다뤄야 한다고 본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의류 상당수가 해외에서 만들어지지 않나.
△숫자로만 보면 미미해 보이지만 우영미, 앤더스벨 등 K패션 브랜드는 국내에서 디자인부터 제조까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국내 의류제조업은 고령화, 일감 감소, 설비 노후화, 투자 여력 부족 등 내부 요인과 다른 국가의 제조업 인센티브 제공, 인건비·원부자재 가격 경쟁력 등 외부 요인으로 도전받는다. 우리나라에서 제조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업종별 차등 없는 근로시간, 임금 구조 등 제조 경쟁력을 높이는 규제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가 패션산업에 별도로 지원했으면 하는 정책도 있나.
△신생·중소 브랜드 위주로 두각을 나타내다 보니 이들 중소기업이 부족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도록 저리대출이라든지,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마케팅·물류비 등을 (정부가) 지원한다면 K패션이 비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협회 차원에서 신생·중소 브랜드를 지원하려 어떻게 준비하나.
△올해로 협회가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디자이너 중심으로 발족해 창립 초기부터 수십 년 동안 신진 디자이너를 육성해왔고 이제 지원 영역을 중소 브랜드로 넓혔다. 유망 브랜드를 발굴하려 K패션 오디션을 열고 국내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수주 전시회인 트렌드페어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브랜드가 뻗어 나갈 수 있도록 해외 전시 참가나 글로벌 마케팅 등을 성장단계별로 지원한다.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협회 문을 두드려달라. 브랜드가 해답을 찾는 데 함께 고민하거나 안내하겠다.
|
△1978년생 △미국 스탠포드대 사회학 졸업 △한국패션산업협회 회장(2024년 2월~) △한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2024년 9월~) △영원무역홀딩스 대표이사 △영원무역그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