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기계 장치의 움직임을 다양한 설치·퍼포먼스·영상 등의 작품으로 선보여 온 정성윤 작가는 기계의 표면과 내부 장치의 상호 관계에 대해 주목했다. 정 작가는 지난 10일부터 서울 서초구 페리즈 갤러리에서 개인전 ‘포도의 맛’(a mucous membrane)을 개최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두 개의 타원’, ‘뱀과 물’, ‘래빗’ 등 설치 작품 3점과 영상 작업 ‘아말감’ 등 총 4편의 신작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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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 작품들도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변화한다. ‘두 개의 타원’은 겹쳐진 두개의 타원이 서로 반대로 움직인다. 검은 타원의 외곽선은 물결치듯 끊임없이 변화한다. ‘뱀과 물’은 자동차에 쓰이는 파마자오일이 서로 맞물려 있는 6개의 롤러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다양한 표면을 만들어낸다. ‘래빗’은 언뜻 보면 움직이지 않지만,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동그란 원이 움직이면서 생긴 궤적을 입체 작업으로 구현한 것이다.
전시 제목 ‘포도의 맛’은 투명한 점막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체 전시의 느낌을 시각, 촉각, 미각 등 감각적으로 극대화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고안했다. 포도 껍질의 질감과 입에 넣고 벗겨냈을 때 과육의 맛, 냄새가 유발하는 감각들이 기계 속의 윤활유와 닮았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한 발 나아가 정 작가는 “사람도 기계의 하나라 볼 수 있다”고 확장한다. 어린 시절부터 기계의 내면에 깊은 호기심을 가져 그는 로봇 그림을 그려도 겉모습뿐만 아니라 기계 내장도 옆에 함께 그렸다. 라디오 같은 기계를 해체해 그 내부를 보기도 했다. 그는 “그 과정이 마치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는 것만 같았다”며 “사람 몸 속에도 장기와 끈끈한 피가 있듯, 기계 속에도 부품과 윤활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람의 육체 기관들이 끊임없이 기능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진화하거나 퇴화하는 과정도 기계와 닮아있다고 부연했다.
신승오 페리지 갤러리 디렉터는 “고정돼 있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무형의 것이 상호작용하는 시공간을 일시적으로 드러나게 한다”며 “관람객들이 작품을 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8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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