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대책법, 과방위 통과
과방위를 통과한 법에 따르면 인터넷기업들은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를 위해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해야 하고 △방통위는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기업에 투명성 보고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인터넷 기업들은 △불법촬영물 삭제나 접속차단 등 유통방지에 필요한 조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받는다. 역외규정이 도입돼 구글, 페이스북, 텔레그램 같은 해외 인터넷 기업들도 불법촬영물 유통금지 의무를 진다.
법의 취지대로라면 현실성과 별개로 n번방 개설을 용인(?)해 장사했던 텔레그램 같은 곳은 과징금을 받게 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네이버·카카오 등이 회원사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은 ‘20대 국회의 인터넷규제법 졸속 입법을 중단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넷기업들, 예측가능성과 해외 사업자 규제 회피 우려
12일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박성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총장은 “최근의 사회 문제를 플랫폼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문제다. 국회는 민생경제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고, 데이터경제를 활성화하자면서 새로운 규제들을 만드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고,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 n번방 기술적·관리적 조치가 과연 어떤 것인지 정부에서도 구체적인 사항을 이야기 못하고 있다. 규제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해외 사업자는 규제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공감되는 면도 있다. 현재의 IT 기술로는 100% 완벽한 불법촬영물 걸러내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으로 사진이나 영상 속 동일인물(성착취 피해자)을 식별해 불법 정보를 추적하는 기술은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됐다. 올해 들어 과기정통부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과 ‘AI 적용 디지털성범죄 탐지기술개발(가칭)’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따라서 이 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도 당장은 AI를 활용한 완벽한 불법촬영물 자동 필터링은 불가능하다. 국회 역시 이런 점 등을 고려해 인터넷 기업에 불법정보 여부를 판단하게 하지 않고 피해자나 공공기관 등에서 성착취물 영상 신고가 들어오면 이를 신속하게 차단·삭제하는 것으로 법 조문을 바꿨다.
‘박사방’ 연관검색어 안 지운 구글 규제 가능해진 측면도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국내 기업들은 ‘박사방’ 사태가 터졌을 때 즉각 연관검색어를 삭제하는 등 이미 노력해왔으니, n번방 대책법의 대상은 ‘박사방’ 연관 검색어를 지우지 않아 네티즌들이 직접 지우기 운동까지 하게 만든 구글 같은 콧대 높은 글로벌 기업들이 되는 측면도 있다. 구글도 방송통신위원회에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인터넷기업들은 20대 국회 말고 21대 국회에서 찬찬히 논의하자고 한다.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 몇 년간 논의하면 글로벌 CP도 공평 규제 안으로 더 잘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혁신 산업인 인터넷의 발전을 해칠 우려도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규제 신중해야 하지만..시행령 잘 챙겨야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통신비밀이 오가는 인터넷에 대한 규제는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또, 인터넷기업들에게 한쪽으로는 검색 중립성을 강조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직접 개입해 일종의 규제기관처럼 활동하라는 것은 정책에 대한 기업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인터넷 기업들도 미성년자의 영혼까지 해친 n번방 사태의 엄중함을 기억했으면 한다. 오죽했으면 강력한 플랫폼 규제법까지 나왔을까 하고 말이다.
인터넷 기업들로선 입법 저지를 주장할 순 있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을 때 카카오톡이나 이메일 같은 사적인 인터넷 공간에 대한 무단 검열 우려를 없애는 n번방 대책법의 시행령 제정에 더 큰 관심을 갖길 바란다. 좋은 취지의 법이라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같은 디테일에서 악마가 튀어나온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