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출간된 ‘소년이 온다’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는 소년 동호와 그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소설이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에서 계엄군을 다시 목격하게 될 줄은 한강 작가는 물론 국민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던 모습을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총기 발사 등 비극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국민이 받은 충격은 너무 컸다.
2024년은 K컬처가 한 단계 도약한 해로 기록될 뻔했다. K팝·드라마·영화 등 대중예술을 중심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K컬처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순수예술까지 관심의 범위가 확장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세계가 다시 K컬처의 저력으로 한국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찬물을 끼얹었다.
비상계엄은 다행히 국회의 발 빠른 계엄 해제 요구안 결의로 해제됐다. 그러나 만약 계엄군의 국회의사당 장악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 세계적인 망신이 불 보듯 했다. 당시 한국에는 팝 스타 두아 리파가 4~5일 예정했던 내한공연을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영국에서 온 BBC 스코틀랜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BBC 프롬스 코리아’ 공연을 위해 한국에 체류 중이었다. 비상계엄으로 이들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한국에서 탈출하려 우왕좌왕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면 K컬처가 쌓아온 한국의 위상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K컬처가 쌓아온 한국의 긍정 이미지를 더 깎아 먹었을 것이 틀림없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번 계엄 사태에 대해 “K팝의 긍정적인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전 세계 관중은 그동안 몰랐던 한국의 다른 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의 혼란이 이른 시일 내 수습되지 않는다면 K컬처는 도약은커녕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내년 한일 수교 60주년 등을 계기로 국립예술단체 등이 추진하던 국제 문화 교류 사업이 당장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인이 K컬처보다 ‘망가진 민주주의’로 한국을 떠올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눈앞의 권력만 좇는 정치인들이 K컬처가 만들어낸 한국의 긍정적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일은 더 일어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