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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에 비해 원비는 몇 배나 더 비싸면서 방학은 한 달이에요. 애낳으라고 독려하면서 정작 정부가 보육·교육 시스템을 이런 식으로 운영하니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낳고 싶겠어요?” 6살 자녀 키우는 학부모 B씨
터질 게 터졌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한 사립유치원의 병폐가 세상에 민낯을 드러내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둘만 낳아 잘 기르는 게’ 미덕이던 시절 정부는 보육과 유아교육을 개인에게 떠맡겼고 우후죽순 생겨난 사립유치원은 부모들에게 갑(甲)으로 군림하며 교육당국과 국회조차 눈 아래로 본다.
전문가들은 사립유치원의 법인화를 통해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는 한편 실제 수요자인 아이들 입장에서 하나의 일관된 시스템으로 영유아 보육·교육을 통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개인사업자 87%…학교인듯 학교아닌 ‘사립유치원’
이번 사태의 핵심은 유아교육법상 분명한 ‘학교’인 사립유치원이 실상은 개인사업자이자 가족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지만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인 곳은 오직 사립유치원 뿐이다. 교육부 교육통계에 따르면 2017년 사립유치원 4282개 중 사립사인은 약 87%, 사립법인은 13% 수준이다. 사립사인은 사실상 개인사업자여서 정부지원금과 원장 개인통장이 분리조차 안돼 있다.
초·중·고나 특수학교 등 사립유치원을 제외한 모든 학교는 국가가 설립한 국공립이거나 사립이라도 학교 법인으로 운영한다. 법인은 법인회계를 따라야 하는 등 보다 엄격한 규정이 존재하지만 사립 유치원은 동네 구멍가게식으로 운영해도 아무런 제한이 없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유·보정책연구팀 부연구위원은 “1980년대 유아교육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예산부족으로 민간의 영역에 떠넘기면서 사립유치원이 증가한 탓에 현재는 아이들 열명 중 일곱 명 이상이 사립유치원에 다닌다”며 “2013년 누리과정 도입으로 정부지원이 증가하고 저출산 문제가 심해지고 보육과 유아교육의 공공성이 중요시되면서 사립유치원을 둘러싼 여러 정책적 과제들이 폭발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도 우리처럼 1970~80년대 민간에 유아교육을 맡겼다가 이제는 90% 이상 법인화를 했다”며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관리감독이 지자체와 교육청으로 나뉘어져 있어 책임을 미루는 탓에 법인화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학교인 듯 학교 아닌 곳이 사립유치원”이라고 설명했다.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유치원은 이미 법적으로 공공의 영역인 학교지만 그동안 정부가 애매한 잣대를 적용해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사립 중·고등학교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법인으로 엄격한 규정이 있다. 나라에서 준 돈을 개인적 용도로 지출한 사실은 어떤 설명으로도 합리화가 안된다”고 꼬집었다.
◇“사립유치원의 학교법인 전환…유보(幼保)통합 서둘러야”
이와 함께 보육과 교육으로 나뉘어진 취학 전 영유아에 대한 정부의 일관된 관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연구위원은 “현 정부에서 국공립 어린이집과 유치원 이용률을 40%까지 확대한다고 하는데 사립유치원 문제 해결과 국공립 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라며 “사립유치원 소유를 학교법인으로 바꾸고 함량미달인 유치원은 정부가 매입해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등 사립유치원들에게 적절한 퇴로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행·재정적 낭비만 초래하는 유아교육과 보육을 어떤 식으로든 통합해 효율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교육부는 유치원, 복지부는 어린이집을 관리하는 건 행·재정적 낭비다. 어떤 방식으로든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한꺼번에 바라볼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게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임재택 유아교육보육혁신연대 상임대표도 “궁극적으로 현재의 보육과 교육 영역을 통합해 만3~5세는 유아학교, 3세 미만은 영아학교로 교육부에서 일괄 관리해야 한다”며 “해당 연령에 맞는 표준 보육비를 교육기관이 아닌 학부모에게 직접 지급해 직접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선택할 수 있게 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