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 ‘조선족 전통 풍미’, 성분표 ‘구육(狗肉)’ 명시
짜파게티 맛 닮은 된장국물…“맛보다 묘한 거리감”
개 식용 금지 한국, 전통 간직한 연변…경계의 표상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무엇이든 먹어보고 보고해 드립니다. 신제품뿐 아니라 다시 뜨는 제품도 좋습니다. 단순한 리뷰는 지양합니다. 왜 인기고, 왜 출시했는지 궁금증도 풀어 드립니다. 껌부터 고급 식당 스테이크까지 가리지 않고 먹어볼 겁니다. 먹는 것이 있으면 어디든 갑니다. 제 월급을 사용하는 ‘내돈내산’ 후기입니다. <편집자주> | 중국 연변에서 구입한 향고기라면의 모습. 향고기는 현지에서 구육으로 불린다. 국물 표면에 떠 있는 것은 들깨가루다.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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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신탕을 먹어본 것은 초등학생 무렵이었다. 한여름, 지금은 돌아가신 친척 웃어른을 따라 무슨 음식인지도 모른 채 식당에 앉았다. 거무스름한 고기, 빨간 국물, 국밥처럼 받아들고 먹다가 뒤늦게 충격을 받은 기억이 남아 있다. 지금은 멀어진 풍경처럼 여겨지지만 수년 전만 해도 여름철이면 보신탕집을 찾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보신이라는 이름 아래 개고기가 일상적으로 소비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잊고 살던 중, 출장차 중국 연변에 방문할 일이 생겼다. 현지 마트 코너를 지나던 중 강렬한 이름의 제품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향고기 라면’. 향고기는 현지서 흔히 구육(개고기)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봉지 전면에는 ‘정통 조선족 풍미’라는 문구와 함께 진한 국물 위로 고기 조각이 담긴 이미지가 그려져 있었다. 구입 당시만 해도 그저 ‘보신탕을 흉내 낸 맛’ 정도로 생각했다.
다만 성분표를 자세히 보면 구육(狗肉)이라는 표기가 존재한다. 향고기라는 명칭이 그저 전통적 표현일 뿐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포함됐다는 것에 적잖게(?) 놀랐다. 제품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신련식품’이라는 회사가 만들었다. 가격은 2위안, 한화 약 400원이다. 예상치 못한 정보에 낯선 감정이 스쳤지만 궁금함도 남았다. 그렇게 거리낌과 호기심이 엇갈린 상태로 결국 집으로 들고 왔다.
봉지를 뜯으면 낯선 일반스프와 액상스프 두 가지가 있다. 일반스프에서는 미원 맛이 강하게 스쳤고 액상스프는 짜파게티 느낌의 춘장 맛이 났다. 건더기는 단출했다. 건조 파·당근 조각이 일부 들었고 고깃조각처럼 보이는 내용물은 없었다. 조리법은 일반 라면과 같다. 물 500ml 끓이고 면과 스프를 넣은 뒤 3~4분 정도 끓이면 완성이다. 면은 일반 한국 라면보다는 훨씬 작았다. 굵기는 진라면 정도다.
 | 향고기라면 내부 구성물의 모습.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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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상스프와 분말스프. 한봉지 2위안(400원) 정도의 가격으로 구성은 단촐한 편이었다.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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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한입을 떠먹었을 때 느껴진 맛은 의외로 익숙했다. 자극적인 향이나 알 수 없는 풍미는 없었다. 일반적인 된장 베이스 라면이다. 보신탕처럼 들깨 가루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고소하고 담백한 풍미가 강하다. 옅은 안성탕면 맛에 짜파게티 스프를 살짝 넣은 맛이 난다. 매운 맛은 제로에 가깝다.
라면 자체로만 본다면 균형감이 잘 잡힌 맛이다. 딱히 놀랄 만한 지점도 없고, 낯선 향취라 할 만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심리적인 데미지(?)다. 평소 보신탕에 큰 거부감이 있던 사람은 아니지만 불편한 느낌이 이어진다.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말았다. 보신탕은 현재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됐고, 유예기간이 끝나는 2027년부터는 보신탕도 법적으로 금지된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흐름이 주류가 되면서 개고기는 더 이상 식재료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분위기다. 반면 조선족사회에서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과거 전통을 간직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 일환으로 보신 문화 역시 잔존하고 있는 셈이다.
향고기라면은 단순한 이색 제품이 아니다. 익숙한 라면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서로 다른 문화가 교차하는 하나의 표상이었다. 사라지는 쪽과 남아 있는 쪽, 한국과 연변의 간극은 그렇게 작은 한 봉지 안에서 또렷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이 제품을 다시 찾을 일은 없다. 그러나 그 경험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먹은 건 라면이었지만 남은 건 전혀 다른 종류의 감각이었다.
 | 중국 연길 공항의 모습. 연길은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다. (사진=한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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