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과 메르코수르 간 협정이 지난 5월 잠정 적용에 들어가고 일본도 6월 경제동반자협정(EPA) 협상을 시작한 상황에서 한국만 제자리에 머물 경우 자동차와 부품, 기계, 화학제품 등 주력 수출품의 경쟁 조건이 불리해질 수 있다. 이번 남미 순방도 이 같은 목적에서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메르코수르(MERCOSUR)는 스페인어로 ‘남부공동시장’을 뜻하는 ‘메르카도 코문 델 수르’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포르투갈어로는 메르코술(MERCOSUL)이라고 부른다.
1991년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가 아순시온조약에 서명하면서 출범했다. 회원국 간 관세를 낮추고 역외 국가에는 공동관세를 적용하는 관세동맹을 거쳐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노동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공동시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흔히 ‘남미의 EU’로 불리지만 통합 수준은 EU보다 낮다. 초국가적 기관이 회원국을 구속하기보다 주요 결정을 각국 정부의 합의에 의존한다. 경제 규모가 압도적으로 큰 브라질은 자국 제조업 보호에 무게를 두는 반면 우루과이와 파라과이는 역외 국가와의 자유로운 교역을 선호한다.
아르헨티나도 정권에 따라 개방과 보호무역 사이를 오갔다. 하나의 시장을 지향한 지 35년이 됐지만 공동관세의 예외와 통관·비관세 장벽이 여전히 남아 있는 배경이다.
그럼에도 메르코수르의 전략적 가치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대두·옥수수·쇠고기 등 세계 식량시장을 움직이는 농축산물 생산국이다.
브라질은 철광석과 희토류 등 핵심광물을 보유한 주요 산유국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리튬과 셰일가스 자원이 풍부하다. 식량과 화석연료, 친환경에너지와 핵심광물을 한 경제권 안에서 함께 확보할 수 있는 드문 지역인 셈이다. 한국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기후변화와 지정학적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식량·에너지·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대상국으로 보고 있다.
한국과 메르코수르의 산업구조는 상호 보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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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메르코수르 국가에는 자원을 현지에서 가공하고 제조업으로 연결할 기술과 자본이 필요하다. 한국이 단순한 원료 구매자를 넘어 정제·소재·배터리·플랜트·조선 등으로 협력을 확장할 여지가 있는 이유다.
문제는 경쟁국들이 이미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EU는 1999년 시작한 협상을 마무리해 2026년 1월 17일 메르코수르와 협정에 서명했고, 같은 해 5월 1일부터 무역협정을 잠정 적용했다. 협정이 완전히 이행되면 메르코수르는 EU산 수출품의 91%, EU는 메르코수르산 수출품의 92%에 대한 관세를 철폐한다.
자동차에 붙는 35% 관세를 비롯해 자동차부품과 기계류에 적용되는 높은 관세도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EU는 중국에 이어 메르코수르의 두 번째 상품교역 상대이며, 2024년 대메르코수르 수출액은 570억유로에 달했다.
일본도 지난 6월 30일 메르코수르와 EPA 협상 개시를 공식화했다. 원유와 핵심광물 공급처를 다변화하고 자동차 관세를 낮추려는 목적이 크다.
반면 한국은 2018년 협상을 시작해 2021년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7차 협상을 진행한 뒤 공식 협상을 열지 못했다. EU산 자동차와 기계가 관세 혜택을 받고 일본까지 협정을 체결하면 한국 제품은 같은 시장에서 더 높은 관세를 부담할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잇달아 방문해 협상 재개 문제를 정상 차원에서 다루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번 순방의 주요 목표로 한·메르코수르 무역협정 협상 재개와 우리 기업의 남미 시장 진출 확대, 식량·에너지 수입선 다변화, 핵심광물 공급망 구축을 제시했다. 협정 재개는 단순히 수출 관세를 낮추는 통상 현안을 넘어 경제안보 파트너를 확보하는 작업이라는 의미다.
물론 메르코수르산 농축산물의 국내시장 개방은 협상의 최대 난제가 될 수 있다. EU도 쇠고기와 가금류, 설탕 등 민감한 품목에는 관세할당과 단계적 개방,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마련했다. 한국 역시 제조업 시장 접근을 확대하면서 농축산업의 충격을 줄일 장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한·메르코수르 협상의 성패는 결국 한국이 남미를 단순한 자원 공급처로 볼 것인지, 제조업과 기술·인프라를 함께 키우는 장기 파트너로 접근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EU와 일본이 먼저 시장의 문을 두드린 가운데 협상 재개가 더 늦어질수록 한국 기업이 치러야 할 비용도 커질 수 있다. 이 같은 접근에서 이 대통령도 협상 재개를 서두르는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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