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마른 수건’ 짜는데…청사 짓고, 노트북 사는 교육청

신하영 기자I 2025.01.23 05:20:00

■이슈포커스-중앙정부 탓만 하는 교육청..재정상태 보니
대학들, 17년째 등록금 동결…“학생들도 인상 필요성 공감”
고교무상교육 ‘정부 지원’ 연장 거부권에 시도교육청들 반발
교부금 등 교육청 재원 5조 증액에 누적 기금 7.4조에 달해
현금 살포·건물 신축 등에 돈 쓰면서 고교 교육 정부에 전가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올해로 17년째 등록금 동결을 이어가고 있는데 더이상 마른 수건 짜내기는 불가하다.” 사립대 총장들의 협의체인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의 백정하 대학정책연구소장이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토로한 말이다. 정부가 2009년부터 시행한 등록금 동결 드라이브에 더이상 동참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 “학생들도 등록금 올리자더라”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정부는 2012년부터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대학에는 국가장학금 2유형 지원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인상을 규제하고 있다. 이런 간접 규제로 정부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는 국립대보다는 사립대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교수는 “올해는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에 참여한 학생들도 등록금 인상 필요성에 공감했다”며 “등록금 인상으로 늘어나는 재정 수입은 학생 복지시설 확충과 통학버스 운영 등에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들은 우수 교수를 채용하려고 해도 재정난으로 못하고 있다”며 “등록금을 17년째 묶어놓다 보니 대학은 교육·연구분야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들은 장기간 지속된 등록금 동결 탓에 허리띠를 졸라매지만 유·초·중·고 교육을 담당하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 지속 증가하자 꾸준히 현금성 복지 지출을 늘리고 있다.

감사원의 2023년 감사 결과에 따르면 경기도교육청은 2021년 코로나 당시 1664억원을 들여 모든 학생에게 교육회복지원금을 지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21년부터 초·중학교 신입생에게 20만~30만원을 입학지원금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경북교육청은 직원 3700명에게 노트북을 지급하는 데에 46억원을 썼다. 강원교육청도 교직원들에게 100만원 이상의 출산 축하금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교 무상교육비마저 중앙정부에 기대려는 시도교육청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고교 무상교육 비용의 정부 부담을 3년 연장하는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교육청들이 잇따라 반발하고 있어서다. 고교 무상교육은 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교과서비를 모두 지원하는 제도로 2019년부터 시행됐다. 제도 안착을 위해 5년간 한시적으로 비용의 47.5%를 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정하고 이를 일몰(법률 효력 상실) 조항으로 담았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국가·지자체에서 고교 무상교육경비로 부담하던 연간 약 1850억원을 매년 추가 부담하게 돼 재정적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교육청의 경우 재정안정기금이 3828억원 남은 상태이며 시설기금으로는 8672억원을 쌓아두고 있다. 천창수 울산교육감도 “최상목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는 교육의 국가 책임에 대한 거부권 행사”라고 비판했다. 울산교육청 역시 재정안정기금(214억원)과 시설기금(692억원)을 합해 약 905억원의 기금이 남은 상태다.

정근식(오른쪽) 서울시교육감이 작년 11월 27일 서울 성동구 금호고등학교에서 열린 ‘고교 무상교육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뉴시스)
◇ 전국 시도교육청 누적 기금 7.4조원

전국 시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기준 교육청 17곳이 세입 감소에 대비해 모아둔 재정안정기금은 총 3조 5362원이며 시설 개선에 쓰기 위해 모아둔 시설기금은 3조 630억원이다. 여기에 기타(정보화·통폐합·폐교활용)기금 7772억원까지 합하면 총 7조 3763억원의 기금을 쌓아두고 있다.

내국세의 20.79%를 전국 시도교육청에 배정하는 교육교부금 규모도 72조 2794억원으로 작년(68조 8732억원)보다 3조 4062억원 늘었다. 여기에 1조 6000억원의 담배소비세를 지방교육세에 전입토록 한 규정의 일몰 시점이 2년 연장됐다. 재정·시설기금 외에도 작년 대비 늘어난 전국 교육청의 재원이 5조원을 넘는 것이다. 고교무상교육에 소요되는 총 비용 1조 9920억원을 충분히 분담하고도 남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교육부는 교육청들의 주장대로 고교무상교육비의 47.5%(9462억원)를 부담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예비비(1조 6000억원)를 써야 한다. 전체 예비비 1조 6000억 중 59%에 달하는 9462억을 고교무상교육에 투입하면 올 한해 언제 생길 지 모를 재난·재해·전염병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 교부금 증가에도 예비비 쓰자는 교육청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교육교부금 규모는 2024년 68조 8732억원에서 2028년 88조 6871억원으로 19조 8139억원(28.8%)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같은 기간 초·중·고 학생 수는 524만 8000명에서 456만 2000명으로 13.1%(68만6000명) 감소한다.

학생 수는 줄고 있는데 교부금 규모는 꾸준히 늘다 보니 교육청들은 청사 신·증축에 남는 돈을 쓰고 있다. 서지영 국민의힘 의원실이 전국 시도교육청 17곳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신·증축 공사는 총 41건이다. 교육청·교육지원청 신축(12곳)은 물론 교육센터·수련원·도서관(29곳) 등도 새로 짓거나 고치고 있다.

교육계는 전국 교육청이 재정적 여력에도 불구 고교무상교육비를 정부에 전가하려는 모습을 계속 보이면 향후 교육교부금 개편 논의에서도 불리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교부금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교부금 감축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교육계 관계자는 “재정 여력 측면에서 보면 교육청들이 재정상 고교 무상교육비를 부담하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원인은 선심성 예산 살포”라며 “교육청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주장하기 전에 선심성 복지 지출 등 예산 낭비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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