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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가]이신범 LPG산업협회장 "시민의식 없인 사회발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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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재 기자I 2016.02.24 06:00:00
이신범 LPG산업협회 회장이 서울 대치동 LPG산업협회 집무실에서 인생의 책으로 꼽은 ‘구한말의 개혁·독립투사 서재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시민의식이 없으면 사회가 발전하지 않는다. 나라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시민의식이 강하게 뿌리 박혀야 한다. 권리에 대한 의지도 강해야 한다.”

지난해 2월부터 LPG산업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신범 회장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시민의식과 휴머니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회장은 이러한 내용을 잘 담고 있는 책으로 ‘구한말의 개혁·독립투사 서재필’을 추천했다.

고(故) 서재필(1864~1951) 박사는 한국인 최초로 현대의학을 공부한 의사이자 한국 근대화운동의 선구자다. 전통적인 양반 사회에 태어난 서 박사는 주권의식을 강조했다. ‘인간은 날 때부터 평등하다’는 사상과 민주주의 개념을 보급하며 전통적인 봉건사회에 젖어 있는 당시 사회를 계몽하려 했다. 갑신정변을 이끌었다가 실패 후 한국에서 쫓겨났다.

어찌 보면 이 회장의 삶은 서 박사의 일생과 묘하게 닮아있다. 이 회장은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인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휘말려 구속됐다. 이후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도 연루되기도 했다. 한때 한국 땅을 마음대로 밟지 못했다.

이신범 회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에 감옥에서 이 책을 보면서 ‘서재필 박사는 정말 대단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며 “그는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적이었고 사심 없이 평생을 다 바친 분”이라고 설명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갑신정변을 일으킨 서재필은 그 대가로 동생 서재창을 참형으로 잃고 일본과 미국에서 피신 생활을 해야 했다. 고국에서 쫓겨나 있던 시절에도 그의 머릿속은 독립운동 생각으로 가득했고 결국 독립문과 독립신문을 만들고 윤치호, 이승만 등을 제자로 길러냈다.

이 회장은 서재필 박사의 생에 대해 오늘날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는 물론이고 많은 젊은이가 본받을 만한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통사람이었다면 그렇게 실패하고 가족이 참형을 당한 뒤 이 나라에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인간에 대한 애정, 휴머니즘이 남다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친일파 논란..“시대를 이해해야”

그는 서재필 박사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 중 친일파 논란에 대해 마음 아파했다. 과거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잣대가 아닌 당시의 배경 속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당시 서양이 수백 년 걸려서 이룬 일을 일본은 아주 짧은 기간에 메이지유신을 통해 이룩했으니 서재필이나 김옥균도 일본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라면서 “오늘의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할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올초 논란이 됐던 ‘국부(國父)’ 이슈에 대해서도 “자꾸 한 사람만을 국부로 만들려고 하니까 논쟁이 된다”며 “미국처럼 여러 명을 ‘파운딩 파더스(founding fathers)’로 부르면 된다. 그렇게 본다면 서재필, 박은식, 이승만, 안창호 등의 그룹이 구한말 한 시대를 고민하며 산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신범 LPG산업협회 회장이 서울 대치동 LPG산업협회 집무실에서 인생의 책으로 꼽은 ‘구한말의 개혁·독립투사 서재필’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책과 절친이 된 남다른 사연..세상을 보는 통로

학창시절부터 모두 4차례 구속 경험이 있는 그는 책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잦은 수감생활 도중 그가 유일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수단이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 소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많이 읽었다”며 “지금이야 책이 많지만, 당시에는 검열 등 통제가 심해 선택의 여지가 많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다만, 삼엄한 검열 속에서도 외국어로 쓰인 책들은 일부 걸러지지 않고 당시 대학가를 떠돌았다. 이 회장도 일본어와 영어로 된 책을 읽기 위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독학했고 지금도 원어로 쓰인 책은 가뿐히 읽는 수준이다.

그는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올바른 일을 해야 하는 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냐를 경험으로 배우기에는 너무 늦다”며 “이것이 우리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시를 즐겨읽는 저항 청년..“온정주의 버려라”

그는 서재필 선생의 일생을 설명하면서 역사적인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 작품들을 함께 소개했다. 신동엽의 ‘금강’, 양성우의 ‘겨울 공화국’,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등이다.

신동엽의 금강은 민란의 발생과 동학의 태동을 노래한 서사시다. 분량이 책 한 권일 정도로 긴 작품이다. 양성우의 겨울공화국 역시 장편 시로 시집 노예수첩에 실렸다. 대한민국을 독재국가로 표현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출판되지 못하고 일본 잡지 세까이(世界)에 번역 게재됐다. 1960년대 발표된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소시민인 자아의 비겁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이 회장은 “동학 농민들의 힘과 개화파의 힘이 합쳐졌더라면 자생적인 발전의 계기가 왔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자기의 자아를 짓밟으려는 바깥의 힘이나 권력에 대해서 강하게 저항하는 시민정신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온정주의가 상당히 강해서 국회에서도 ‘뭐 그 정도 갖고 그러냐. 그만해라’ 이런 분위기가 많다”며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되는데 눈감아준다든가 하는 온정주의로는 사회가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LPG산업 발전 위해 뛴다

이 회장은 작년 2월 1일 LPG산업협회장에 취임한 이후 1년도 안 돼 의미 있는 족적을 남겼다. 업계의 숙원이었던 LPG연료 사용 제한 관련 법안을 작년 12월 일부 완화하는 쪽으로 개정하는 데 성공했다.

LPG업계 모두가 힘을 모은 결과라지만 그동안 국회 내에서 많은 활동을 해온 이 회장의 역할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컸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그동안 LPG업계는 정유업계와 힘겨루기를 벌이는 족족 좌절을 경험해야 했다. 휘발유와 경유가 LPG보다 더 보편적인 연료였고 기업의 로비능력도 더 뛰어났다. 무엇보다 정부에게 휘발유는 LPG보다 ℓ당 3배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효자 연료라는 점을 감안하면 승부가 정해져 있는 싸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회장은 현실적인 한계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왜 특별히 LPG만 못 쓰게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면 공정하지 못한 법 때문이라는 답밖에 없었다”라며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저항이 있지만, 꾸준히 설득하고 노력하면 된다고 믿는다. 계속해서 LPG 관련 법과 제도를 공정하게 개선하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신범 LPG산업협회 회장이 LPG산업협회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이신범 LPG산업협회장은

1950년 충청남도 예산 출생으로 용산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69년 3선 개헌 반대 학생운동에 뛰어든 이후 반독재 투쟁 등으로 모두 4차례 투옥돼 5년8개월을 복역했다. 1983~1988년 5년간 미국 워싱턴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국제정책개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통일민주당 정책실장, 환경관리공단 이사를 역임하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한나라당)에 당선됐다. 2000년대 들어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객원연구원,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기획위원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2월부터 한국LPG산업협회장직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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