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감시위 10개월…'뉴 삼성' 변화 이끌었다

피용익 기자I 2020.10.22 05:00:00

이재용 부회장 대국민 사과 후 준법경영 실천
준법위 성과 국정농단 재판 양형에 반영될지 관심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중단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이달 말 재개된다. 재판부의 권고에 따라 삼성이 설치한 준법감시위원회의 성과가 양형에 얼마나 반영될지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오는 26일 오후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의 뇌물공여 등의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을 연다. 법원은 준법감시위 활동을 평가할 전문심리위원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주심이었던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지정한 상태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공식 출범 이후 이재용 부회장이 주도하는 ‘뉴 삼성’ 혁신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준법감시위원회가 이 부회장의 감형을 위해 ‘보여주기식’ 활동에 그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빗나간 셈이다.

◇보여주기식 아닌 실질적 변화 이끌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에 앞서 김지형 위원장은 올해 초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삼성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고 독자 운영을 통해 삼성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변화는 곧바로 나타났다. 지난 2월 삼성 17개 계열사는 준법감시위원회 의견을 수용해 7년 전에 있었던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기부금 후원내역 무단 열람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삼성은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고, 시민단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5월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이 부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 역시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이 부회장은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지할 것이며, 시민사회와 언론 등의 조언과 질책을 열린 자세로 경청하는 한편 경영권을 더 이상 물려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 삼성의 문화로 ‘준법’이 확고하게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사과를 이끌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7개 계열사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노사 관계 자문그룹을 이사회 산하에 두고 실질적 역할을 부여하기로 했다. 국내외 임직원 대상 노동 관련 준법 교육 의무화, 컴플라이언스팀 감시활동 강화, 노동·인권 단체 인사 초빙 강연 등도 방안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시민단체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할 전담자를 지정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삼성 해고노동자 김용희씨가 300일 넘게 지속한 고공 농성을 푼 것은 당사자와 삼성, 시민단체가 함께 사회적 합의를 통해 난제를 해결한 사례다.

삼성이 50억 원 이상 규모의 계열사 간 내부거래를 진행할 때 준법감시위의 사전 승인을 반드시 거치도록 한 것도 의미있는 변화로 꼽힌다. 노사관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 출신인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지난 6월초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고 지난달에는 삼성전자 노사가 단체교섭을 위한 사전협의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조만간 본 교섭에 착수할 예정이다.

◇준법경영 전면에 내세운 ‘뉴 삼성’ 속도

‘준법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삼성의 변화는 최근 발생한 삼성전자 임원의 국회 무단출입 사건을 처리한 과정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기자 출입증을 갖고 국회를 드나들었던 임원의 책임을 물어 사표를 즉각 수리한 데 이어 특별 감사를 실시해 규정을 위반한 직원 2명을 징계 처분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삼성이 준법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지난 8일 유럽 출장 직전 준법감시위 위원들과 만나 “지난번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부분을 반드시 지켜나가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준법감시위가 출범했을 때만 해도 이재용 부회장의 양형을 고려한 쇼일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다”면서 “비록 재판부의 권고에 따라 준법감시위를 설치한 것이더라도, 삼성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 준법감시위는 지금까지 8차례에 걸쳐 정기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맺은 삼성전자(005930)·삼성전기·삼성SDI·삼성SDS·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화재 등 7개 협약사들이 위원회 권고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방안과 진행 경과를 보고한다. 최근 열린 회의에서 위원회는 관계사들의 내부거래 안건을 검토해 승인하고, 접수된 신고·제보들에 대한 검토 및 처리방안을 논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5월6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관련 대국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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