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도 고기도 덜먹어요"…찬바람 부는 전통시장

김혜미 기자I 2025.01.22 05:40:02

[얼어붙은 설민심]②4인가족 설 제수용품 비용 30만2418원
시금치·배 등 12개 품목, 작년 설보다 가격 올라
가격 내려도 가처분소득 감소로 소비자 체감 못해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안받는 경우도…“지류 선호”

[이데일리 김혜미 김세연 한전진 기자] “며칠 사이에 갑자기 값이 많이 올라서 깜짝 놀랐어요. 2~3일 전까지만 해도 포항초 한 단에 2500원이었는데 오늘 보니 4300원이더라고요. 대형마트랑 재래시장을 오가면서 장을 보는데 보통 재래시장이 좀 더 싸서 자주 이용하죠. 그런데 오늘 보니 전통시장도 엄청나게 올랐네요.”

설 명절연휴를 일주일 앞둔 지난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에서 만난 이현정(55) 씨는 주말을 맞아 장을 보러 나왔다가 오른 채소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씨는 “어떻게 며칠 사이에 이렇게 오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장을 보긴 해야 하는데 난감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4인 가족 제수용품 구입비 30만원대…시금치 24.3%·배 18.1%↑

장기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설을 앞두고 물가가 급등하면서 서민들은 졸라맨 허리를 한 번 더 조르느라 아우성이다. 지난 10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설을 맞아 공개한 1차 조사에서 설 제수용품 구입비용은 4인 가족 기준 평균 30만 2418원으로 나타났다. 설 제수용품 구입비용은 그나마 전통시장이 24만 1450원으로 가장 저렴했다.

조사대상 23개 품목 가운데 지난해 설 당시보다 가격이 오른 제품은 12개 제품으로 조사됐다. 시금치 가격이 출하량 감소 등으로 지난 설 대비 24.3% 올랐고, 배와 쇠고기 가격은 각각 18.1%와 16.4% 상승했다. 대추 가격은 지난 설보다 14.8% 올랐고, 돼지고기 가격도 14% 상승했다.

서울 망원시장 과일가게에 진열된 과일들. 제수용 사과가 1개 4000원, 단감이 1줄 6000원에 판매되고 있다.(사진=김세연 기자)
지난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만난 김모(61)씨는 작년 설보다 차례상 준비 비용이 2배 이상 비싸진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김씨는 “얼마 전까지 조기 한 마리에 7000원이었는데 오늘 보니 1만원이더라. 명절이 가까워지면 1만 2000원으로 오른다길래 미리 구매했다”며 “작년 추석보다도 전반적으로 가격이 50% 이상은 오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설보다 일부 품목은 가격이 하락했지만 소비자들은 체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는 고물가·고금리 영향으로 가구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든 영향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통계청이 공개한 가구당 평균소비성향(가처분소득 중 소비지출 비율)은 지난해 3분기 69.4%를 기록해 전년동기(70.7%)보다 1.3%포인트 낮아졌다. 평균소비성향 수치가 하락한 것은 지난 2022년 2분기 이후 9분기 만으로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을 줄였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망원시장 내 통행로가 한산하다.(사진=김세연 기자)
실제로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 조사에서 단감과 곶감 가격은 각각 지난 설 대비 28.4%와 16.2% 내렸고, 사과값도 7.2% 하락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비싸다고 느꼈다. 차 모(70) 씨는 “전반적으로 물가가 너무 올랐다. 사과를 10개 구매하려고 했지만 5개만 사고 고기도 많이 구입하지 못해 먹는 양도 줄였다”며 “크기는 작고 가격은 자꾸 비싸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인들도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망원시장에서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황금주(73) 씨는 “12월 계엄사태 이후 오가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사람들이 음식을 해먹지 않으니 일반 식당보다 손님이 더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며 “작년과 비교하면 1월 매출은 50% 수준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특가코너에만 북적북적…선물코너는 ‘한산’

사정은 대형마트도 비슷했다. 특가 할인코너에는 사람들이 몰렸지만 채소와 과일, 육류 등 대부분의 일반 매대에서는 극심한 고물가에 주부들의 신중함이 엿보였다.

19일 이마트(139480) 용산역점에서 만난 50대 주부 홍 모씨는 국산 딸기 500g을 집어들었다가 내려놨다. 홍씨는 “딸기 한 팩에 1만원이 넘어 구매하지 않았다”며 “식비를 아끼려다보니 딸기 대신 채소나 고기를 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푸념했다.

설 명절 선물 코너는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었다. 선물세트 코너 매대에는 4명의 점원이 고객을 안내하고 있었지만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성비’(가격대비성능)를 내세우며 지나가는 카트를 잡으려는 노력을 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장조림·캔햄·카놀라유 구성의 2만원대 식품 선물세트를 내려놓은 신 모 씨는 “오랜만에 설 명절 고향에 내려갈 예정이라 선물세트 구매를 고민했는데 그냥 현금을 드리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지난 19일 오후 롯데마트 서울역점. 과일 코너에서 한 모녀가 1.4㎏에 1만 4990원인 국내산 감귤을 가격을 보고 구매를 망설이고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근처 롯데마트 서울역점도 비슷했다. 중국인, 일본인 등 외국 관광객들만 과자와 세제 등 생필품을 카트에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국인들은 ‘1+1’, ‘2+1’ 상품, 가격이 저렴한 자체브랜드(PB) 상품만 집중적으로 담고 있었다. 롯데마트 PB 제품인 3990원짜리 떡국떡을 집은 50대 주부 박지선 씨는 “식비가 비싸 장보는 횟수도 일주일에 1번에서 한 달에 1번으로 줄였다”며 “다른 떡국떡 제품은 7000원이나 해서 가장 저렴한 제품을 집었다”고 말했다.

◇정부, 성수품 공급 확대·할인 지원 등 대책 내놨지만…

정부는 이달 초 소비 진작을 위해 설 명절 대책을 발표했다. 서민과 중산층을 위해서는 배추와 무, 사과 등 16대 성수품을 역대 최대 규모인 26만 5000t 공급하고, 900억원 규모의 정부 할인지원 및 유통업체 할인, 성수품 가격 할인,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15% 할인 등의 대책을 내놨다. 소상공인을 위한 대책으로는 명절자금 39조원, 전통시장 성수품 구매대금 50억원 공급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대책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15% 할인과 결제액의 15% 환급, 온라인전통시장관 특별할인전 5% 할인쿠폰 지급 등을 언급하며 최대 35%의 할인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고령층 비율이 높은 전통시장에서는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사용이 원활하지만은 않다.

영천시장에서 건어물가게를 25년간 해왔다는 김영옥(74) 씨는 “요새는 다들 스마트폰에 모바일 상품권을 갖고 다니는데 우리 가게는 가입을 안해서 (모바일 상품권을) 못받는다”며 “지류 상품권이 좋았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오후 이마트 용산역점의 설 선물세트 판매 매대. 안내 점원이 4명이나 있었지만 소비자들의 발길은 좀처럼 닿지 않았다. (사진=한전진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