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완료" ILO비준 강행하는 정부…노동계만 편드나 기업들 '한숨'

김소연 기자I 2020.09.28 05:00:00

노조 설립신고 후 해고자 받아도 손 쓸 방법 없어
해고자 복직투쟁 거세질 수도…가입 폭 넓어져
경영계 "노동계 기울어진 쏠림 더 커질 것" 우려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경영계는 문재인 정부 들어 가뜩이나 노동계로 기울어진 힘의 쏠림현상이 더 심화하고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가 부적법하다고 판결한 게 대표적이다. 대법 판례를 앞세워 개별 기업 노동조합에서 해고자·실업자 등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켜도 제재할 수단이 사라진 탓이다. 경영계에서는 해고자 복직투쟁이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해고자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ILO핵심협약 비준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이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과 조합원 등이 지난 3일 오후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선고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정부 “올해 안에 ILO 핵심협약 비준·노조법 개정안 통과”

지난 25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을 비롯해 국내 30대 기업 인사·노무 책임자(CHO)를 만난 자리에서 이번 21대 정기 국회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과 탄력근로제 도입을 위한 법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안에 국회에서 조속히 입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경영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조법 개정을 두고 경영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경영계는 ILO 협약 비준으로 인해 오히려 노사 갈등이 심화하고 기업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해고자·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노조의 단결권을 강화한 만큼 경영계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방안도 같이 마련해야 노사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노조법 개정과 관련한 경영계의 관심과 우려는 잘 알고 있다”면서도 “우리나라 국격에 맞도록 국제 노동기준을 준수하고 통상 리스크를 해소해 기업의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강행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우리나라 노동현실을 고려한 균형잡힌 법개정이 이루어지도록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과 함께 관련 법안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 3개 법안을 올해 안에 국회에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 20대 국회에 ILO 핵심협약 미비준 4개 조항 중 3개 조항에 대한 비준 동의안과 노조법 등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경영계와 야당의 거센 발발에 밀려 논의조차 못한 채 폐기했다.

정부는 지난 7월 국회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관련 법안을 다시 제출했다. ILO 핵심협약은 국제노동기구가 채택한 기본적 노동권의 보장과 관련한 국제규범이다. 190개 협약 중 8개 협약은 핵심협약으로 정했다. ILO 187개 회원국 중에서 146개국이 핵심협약 8개를 모두 비준 완료했다. 한국은 8개 핵심협약 중에서 4개를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정부가 이번에 비준하려 하는 협약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 단결권에 관한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3개다. 이 협약은 각각 강제노동을 금지하며, 노조의 자유로운 구성을 보장하고, 노조 가입으로 인한 불이익을 막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국내법도 손질이 필요하다. 정부가 함께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은 해고자·실업자 및 소방공무원·대학교원도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노동자 단결권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노조 가입 자격은 정부가 아닌 노조가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데일리 DB
◇해고자 노조가입 못 막아…정부 ‘노조아님 통보 조치’ 효력 상실

경영계는 최근 대법원의 전교조 합법화 판결이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전교조가 합법 노조로서 지위를 회복해서다.

현행 노조법 제2조 4항은 노조가 해고자를 포함한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한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노조법 시행령 제9조 2항에는 설립 신고증을 받은 노조에 설립 신고서 반려 사유가 생기면 행정 관청은 시정을 요구하고 노조가 불응하면 법외노조 통보를 하도록 하고 있다. 고용부는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을 근거로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했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정부가 조치한 법외 노조 통보가 위법하다고 봤다. 법외노조 통보 시행령 조항이 노동 3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노동3권은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는데, 법외 노조 통보 조치의 근거가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있어서다.

이에 따라 당장 개별 기업 노조가 해고자를 노조원으로 가입시켜도 정부가 노조 아님을 통보할 수 없게 됐다. 대법 판결로 노조 아님 통보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인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이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노조 설립 신고 이후에 노조에서 해고자 등도 노조원으로 가입하도록 해도 정부가 손 쓸 방법이 없다. 사실상 가입자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상황이 됐다.

고용부 관계자는 “설립 신고 이후에 해고자를 노조원으로 받은 노조에 대해 정부가 시행령 9조 2항에 따른 노조 아님 통보는 할 수 없다”면서 “정부가 어떤 조치를 할 수 있는지는 법적 검토가 좀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정부는 해고자·실업자 등도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에 논의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대법원 판결로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은 노조 설립 신고 때만 거를 수 있고, 이후에는 규제나 단속 조항이 없어지게 됐다. 결국 실업자나 해고자 등의 노조 가입 현상이 확산할 수 있다”며 “해직자의 복직 투쟁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노사 관계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경영계에서도 이런 점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미래 지향적인 노사 관계를 위해 충분한 논의과정과 다양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며 “이번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조법 개정안이 노사 관계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노사 관계의 규칙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민주노총과 ILO긴급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조건 없이 비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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