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철의 트렌드 읽기]新디자이너 예찬

편집부 기자I 2014.03.07 08:18:52
‘봄 여름 가을 겨울, 두루 사시를 두고, 자연이 우리에게 내리는 혜택에는 제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도 그 혜택을 풍성히 아낌없이 내리는 시절은 봄과 여름이요, 그 중에도 그 혜택을 가장 아름답게 내는 것은 봄, 봄 가운데도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이 때 일 것이다.’ 이양하 선생이 쓴 수필 ‘신록예찬’의 시작 글이다. 모든 계절이 다 좋지만 꽁꽁 싸매고 있던 겨울이 답답한 느낌이 드는 지금 3월, 봄이다.

봄을 즐기기에는 여전히 쌀쌀하고 황사도 있어 모양은 도무지 안나오지만 그래도 쇼 윈도우의 상품이 바뀌는 변화의 계절이라 설레인다. 지루함을 못견디던 패션 피플들이 지난 겨울 선택한 상큼한 디자인들이 ‘만산에 녹엽이 싹트는’ 모습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이자 ‘취미’인 윈도우 쇼핑이 즐겁지만은 않다. 패션 시장에서 뿌리 깊은 전통과 기능이 강조되었던 시기가 지나고 이제는 디자이너의 감성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만 같은데 막상 그러하지가 않다. 똑똑해진 소비자들은 해외 디자이너의 컬렉션 정보를 읽고 서로 나누고 있고 스타일링 능력도 뛰어나다. 그런 소비자들의 변화를 주도하려면 남다른 선택을 해야만 하는데 지금 대다수의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위로는 명품, 아래로는 SPA로 양극화된 시장에서 상품과 디자인에 대한 입장 정리를 잘 못하고 있는 듯하다.

유통을 담당하는 백화점과 쇼핑몰의 선택은 어떠한가? 더 이상 자기 이야기를 담아 내지 못하는 브랜드로는 똑똑한 소비자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작은 규모이지만 컬렉션을 진행하고 쇼룸을 운영하는 디자이너들로부터 백화점 바이어와의 상담이 늘어 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운영상 몇가지 과제를 해결한다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다.

얼마전 국내외 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디자이너가 신진 디자이너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스펙이 중요하지 않으며 열정과 노력, 하고자 하는 의지, 된다는 믿음’ 이었다. 디자이너 지원과 사업 협력 방식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낙후되어 있고 선후배간 이끌어 주고 조언을 해주는 관계도 잘 만들어 지지 않는 우리 패션 산업의 한계를 감안하면 태도와 의지에 대한 그의 표현이 어쩜 당연한 것이다. 디자이너로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협력이 아닌 생존을 위한 홀로 서기를 선택했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이양하 선생이 ‘그러기에, 초록에 한하여 나에게는 청탁이 없다. 가장 연한 것에서 가장 짙은 것에 이르기가지 나는 모든 초록을 사랑한다. 그러나 초록에도 짧으나마 일생이 있다. 봄바람을 타고 새 움과 어린 잎이 돋아 나올 때를 신록의 유년이라 한다면, 삼복 염천 아래 울창한 잎으로 그늘을 짓는 때를 그의 장년 내지 노년이라 하겠다. 유년에는 유년의 아름다움이 있고, 장년에는 장년의 아름다움이 있어, 취사하고 선택할 여지가 없지마는,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 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 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천진하고 발랄한 담록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고 한 것처럼 각자의 색을 내는 모든 디자이너들은 그 경력에 상관없이 소중하고 멋지다. 기업형 패션 브랜드들이 자기 색을 내지 못하는 지금, 많은 어려움을 이기고 ‘천진하고 발랄한 담록’의 색으로 새롭게 선보일 젊은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즐거워하며 응원한다. 박병철 캄럼리스트 pete.b.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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