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협조하면 감형”…檢 한국형 플리바게닝 도입 추진

윤여진 기자I 2018.04.03 06:30:00

대검 검찰개혁위원회 4월 중순 발표 예정
‘주범과 공범관계인 종범’·중대 부패범죄 한정
검찰·피고인·변호사 합의에 판사 승인 있어야
기소법정주의·검찰총장후보추천위 독립안도 함께
형량 거래는 '정의 실현' 아닌 '정의 거래'라는 비판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윤여진 기자] 검찰이 이른바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유죄협상제도)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플리바게닝이란 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검찰에 공모자의 범행을 밝히는데 검찰에 협조할 경우 형벌을 감면해주는 제도다.

미국, 독일, 일본 등 사법 선진국에선 이미 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검찰은 내부고발이 필요한 사건에 한해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검찰이 수사 편의를 위해 플리바게닝을 남용할 수 있고, 범죄에 가담한 사람이 검찰 수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형벌을 감면해 줄 경우 법치주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검찰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는 4월 중순께 △사법 협조자 형벌감면(플리바게닝)제도안 △기소법정주의안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독립안 등을 마련해 검찰에 도입을 권고할 계획이다. 모두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검찰은 법무부와 협의 과정을 거쳐 정부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검찰은 플리바게닝제도를 이용하면 내부고발자의 도움 없이는 진상규명이 어려운 사건을 보다 쉽게 수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나 ‘다스’(DAS)의 차명 소유 사건 같이 정경유착 형태의 경제범죄 관련 특별수사가 대표적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장시호(39)씨는 검찰에 최씨의 두 번째 태블릿 PC를 제출했다. 다스 실소유주 사건의 경우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이 검찰에 제출한 자술서가 ‘다스의 진짜 주인은 이명박(77·구속) 전 대통령’이라는 수사의 전제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범 아닌 종범에만 제한적 적용

다만 개혁위는 사법 협조자를 ‘주범과 공범 관계인 종범(방조범)’으로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장씨의 경우 대기업과 공기업에게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를 지원하도록 강요한 혐의에서 최씨와 공범관계였지만 종범은 아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지난해 12월 6일 “범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가장 많은 이득을 본 건 장씨”라며 장씨에게 검찰 구형의견보다 1년이 많은 2년 6월을 선고했다.

이와 달리 ‘MB 집사’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경우라면 플리바게닝을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지난 5일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 4억원을 수수했다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김 전 기획관을 구속기소했다. 검찰의 공소장은 김 전 기획관을 종범으로, 이 전 대통령을 공범이자 주범으로 규정했다. 김성호(67) 전 국정원장과 원세훈(66) 전 국정원장에게 특활비를 받아오라고 지시한 사람이 이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단순 금품을 전달자인 김 전 기획관의 죄질은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판단했다.

개혁위는 플리바게닝 적용 범죄 범위에 대해 ‘중대부패 범죄’와 ‘모든 범죄’ 두 가지를 놓고 장·단점을 비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모든 범죄를 대상으로 플리바게닝제도를 운영한다. 개혁위는 제도 자체에 반대하는 여론을 감안해 독일처럼 △뇌물 △알선수재 △알선수뢰 △배임 △횡령 혐의에 한정해 우선 적용한 뒤 향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 검찰권한 비대화·법치주의 훼손 우려도

개혁위는 형벌감면제도가 검찰 수사의 편의를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의식해 두 가지 ‘외부 통제안’을 마련했다. 피의자와 검사가 합의하더라도 담당 변호사의 동의하지 않으면 형벌감면은 이뤄지지 않는다. 수사 성과를 내기 위한 검사의 유인에 피의자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다.

또 피의자·검사·변호사 등 3자 합의에 대한 법원의 승인도 필요하다. 검찰이 이번에 도입하는 형벌감면제도가 영미법계의 플리바게닝과 차이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영미법계 플리바게닝은 피의자가 자백할 경우 담당 변호사, 3자 합의 등이 없어도 형벌을 감해준다.

검찰이 수사권을 쥐고 기소독점권까지 유지하는 상황에서 제한적이나마 형별감면권까지 갖게 될 경우 검찰의 권한이 과도하게 비대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종범이라 해도 수사협조를 이유로 형벌을 감해주게 되면 ‘법치주의 훼손’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국민들은 검찰이 범죄자와 형량 거래를 수용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며 “결국 형량을 깎아주는 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거래하는 것처럼 비춰져 법치주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또 검찰이 형량감면제도를 원래 목적대로 사용하기 보다는 특정인을 봐주기 위한 방법으로 악용하거나 피의자에게 있는 범죄가 아닌 없는 범죄를 자백토록 유도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