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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故한종희, 짧지만 강렬했던 두 번의 만남

이준기 기자I 2025.03.26 05:30:00
[이데일리 이준기 산업에디터] 아무리 숨겨봤자, 그는 토종 한국인이자 토종 삼성맨이었다.

2018년 3월7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삼성전자 ‘더 퍼스트 룩 2018 뉴욕’ 행사장에서 처음 본 그의 모습은 이랬다. 검은 뿔테에 푸른 세미정장, 헤드셋 마이크로 한껏 멋을 부렸지만,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단상에서 QLED TV 신제품을 소개하는 어색한 한국식 영어발음은 그를 더욱 토종 한국인으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25일 별세한 고(故)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인상이었다. 당시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사장) 5개월 차였던 한 부회장은 막 뉴욕특파원 5개월 차에 접어들던 필자에게 와인 잔을 건네며 “한국에서 소주와 김치를 싸올 걸 후회한다”고까지 했으니, 더는 ‘토종 한국인’ 얘기를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그의 삼성맨다운 자세도 뇌리를 스친다. 당시 화이트아웃(폭설로 시야가 심하게 제한되는 날씨 상황) 현상까지 발생할 정도의 뉴욕엔 눈 폭풍이 불었지만, 한 부회장은 “삼성은 어떠한 악천후 속에서도 할 건 하는 조직”이라며 뼛속까지 삼성맨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삼성전자가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위치한 옛 증권거래소 건물에서 글로벌 미디어, 주요 거래선 등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8년형 QLED TV 신제품을 공개하는 ‘더 퍼스트룩 2018 뉴’(The First Look 2018 New York)’ 행사를 개최했다. 삼성전자 한종희 사장이 2018년형 QLED TV와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그날 필자가 삼성전자의 TV 신제품 기사 대신, 한 부회장을 조명하는 기사를 써서 서울로 보낸 배경이다.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 여러 내부인에게 그에 관해 물었는데, 대답 역시 예상했던바 그대로였다. 당시 복수의 삼성 사람들은 한 사장은 두고 “매사 코뿔소처럼 일한다”며 안에서는 그를 ‘코뿔소 CEO’로 부른다고 했다. 필자는 기사 부제에 ‘TV 개발에 평생을 바친 코뿔소’라고 썼다.

삼성전자는 이날 한 부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지난 37년간 회사에 헌신하신 고인은 TV 사업 글로벌 1등을 이끌었고, 어려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세트부문장 및 생활가전(DA)사업부장으로서 최선을 다해오셨다”고 했다. 실제 그는 1988년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개발팀에 입사한 이래 30년 넘게 줄곧 TV 한우물만 팠던 걸로 유명하다.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상품개발팀장, 개발실장, 사업부장 등 그의 이력 모두 VD로 채워져 있다. 입사 이후 석·박사에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도 오로지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삼성 후배들은 한 부회장의 빈자리는 크게 느끼고 어깨는 더욱 무거워져야 한다. 위기설이 불거진 올해 들어, 그는 VD를 넘어 미래 먹거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도 집중했었기 때문이다. 한 부회장은 최근 삼성전자 주총에서 “올해는 보다 유의미한 인수합병(M&A)을 추진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겠다” “첨단 휴머노이드 개발에 활용해 발 빠른 기술 검증과 고도화를 진행하겠다” 등 여러 청사진을 제시했었다.

한 부회장이 삼성전자 대표이사에 오른 2022년 필자는 전자팀장으로서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4년 전에 비해 홀쭉해진 한 부회장을 보며, 질문 대신 “건강 잘 챙기세요”라는 덕담을 건넸었다. 당시엔 ‘송곳 질문을 던질 걸’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나름 잘한 것 같다. 짧지만 강렬했던 그와의 두 번의 만남, 아무래도 평생 각인될 것 같다. 토종 한국인이자 삼성맨인 고 한종희 부회장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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