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봉의 중국 비즈니스 도전기]14회:북 대사관에 권총 사준 조선동포들

이민주 기자I 2017.04.10 06:00:00
중국 베이징대학교


중국 상해에 갔던 판매법인 대표 한국 분이 급히 베이징에 돌아왔다. 내가 계약하기 1년 전에 이미 모 한국주류회사 그룹 중국 법인과 계약한 그 조선동포의 말을 전해 들으니 기가 막혔다. 그는 모 한국 주류회사 그룹과 한중수교 이전부터 좋은 관계를 맺어왔다. 모 한국주류회사 그룹이 중국 본토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사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 인연으로 그 조선동포는 한국에 가 모 한국주류회사 그룹을 방문, 그룹 회장님도 만난 사이다. 이 정도면 중국 총판 계약을 맺을 만했다. 조선동포가 잘 나가는 그룹 회장을 쉽게 만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한국인도 결코 쉽지가 않다.

나는 이 사업을 소개해준 분, 그 주류회사 그룹 중국 법인 대표 등을 만나 대책을 논의했으나 뽀족한 대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서울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 그룹 회장님은 만날 수가 없었다. 간신히 관계 임원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투자한 자금 규모를 설명한 후 최소한 일부 지역에서라도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으나 허사였다. 단지 “중국 법인에서 계약한 것이니 중국 법인과 협의하라”고 했다.

베이징에 돌아와 보니 더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판매법인 대표를 맡았던 한국분이 한숨을 내쉬며 판매법인 한국인 임원과 조선동포 임원, 경리를 맡았던 조선동포 등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금고에 있던 돈과 경리 장부도 모두 가지고 갔다고 한다. 대표만 남겨 놓고 모두 사라진 것이다. 눈앞에 캄캄했다.

한국 언론 베이징 특파원들과 한국 대사관을 찾았다. 한인회 등 부탁할 만한 사람들은 다 만나봤다. 결론은 포기하라는 것이다. 도망친 사람들 찾기도 힘들지만 찾는다 해도 가지고 간 돈은 이미 다 날아갔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시 나타나지 않을 각오로 도망친 사람들이라는 것. 포기하기에는 피해가 너무 컸다.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1996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어찌해야할지 도무지 방향이 잡히지 않았다. 가족까지 모두 베이징에 왔는데 일이 단단히 틀어지고 말았으니 말이다. 당장 호구지책이 필요했다. 그 때 오래전에 만났던 조선동포 K씨가 나타났다. 한족 여인과 결혼해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골동품상을 하던 사람이다. K씨도 골동품 상점을 접고 새로 할 일을 찾고 있는 중이라는 것.

당시 한국 유학생들이 베이징에 밀어 닥치고 있었다. 베이징대, 청화대 근처 학원가는 물론 유명 대학 근처에는 한국 식당, 술집이 하루가 멀다 않고 문을 열었다. 가는 식당 마다 손님이 북적였다. K씨와 함께 장소를 물색한 끝에 유명 대학 두 곳 근처에 적당한 식당 자리가 있었다. 임대료도 적당했다. 갖고 있는 자금으로 조금 부족해 K씨에게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K씨가 선 듯 답변을 주지 않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급보가 날아왔다. 몇 달 전 사라진 주류 총판 한국인 임원 J씨가 북경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없어진 돈을 찾지는 못해도 도망친 이유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비상 조직망’을 가동했다. J씨가 모 한국회사 사무실에서 그 회사 대표와 면담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바로 그 회사를 방문했다. 조선 동포 K씨와 한국인 후배 등 3명이 사무실에 들어 닥쳤다. 그 한국회사 대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J씨에게 함께 가자고 하자 J씨는 거부하다 갑자기 도망치려 했다. J씨를 가까스로 붙잡아 인근 호텔로 데리고 갔다. 1억 원 가까이 투자한 자금 사용 내역서와 그간에 있었던 일을 자필로 작성하게 했다.

“총판 2중 계약 문제가 불거져 회장님이 한국에 갔다 오는 사이 돈을 모두 빼돌렸다. 판매법인 한국인 대표도 다 아는 사실이다. 조선동포들이 북한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권총과 설탕을 사주고 현금도 줬다.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들이 아니면 영업망을 조직,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평생 잊지 않고 변제하겠다.”

판매법인 한국인 대표를 불러 J씨가 자필로 쓴 시인서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사업 자금으로 그들에게 권총까지 사주다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 중국이여!

<다음회 계속>

중국 전문가, 전직 언론인

중국 칭화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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