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공급자 우위 구도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만큼 AI 수요가 잦아들 경우 LTA가 오히려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추후 5년간 AI 메모리가 초호황을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워서다. 잦은 장기 계약은 과거 여러 업계에서 나타난 버블 신호다.
뉴노멀 된 메모리 장기공급계약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메모리 업체들은 최근 글로벌 빅테크와 잇달아 LTA를 체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주요 5대 글로벌 데이터센터 고객과 계약을 완료했으며, AI 관련 대형 고객 5곳과도 협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역시 핵심 고객을 포함한 10여 곳과 LTA 협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진행 중인 협상까지 마무리되면 중장기 생산계획 기준 전체 메모리 생산능력(CAPA)의 60~70%를 다년 계약 물량으로 채울 것으로 전망했다.
|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선수금을 받아 계약 이행력을 높이는 방식을 택했다. 삼성전자는 다년간 보유하는 예치금 성격의 선수금을 상당 규모 계약 조건에 포함했고, 이 가운데 약 4분의 1을 이미 수취했다.
AI 버블땐 장기계약도 재협상 불가피
장기 공급계약이 이번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애플은 지난 2005년 삼성전자, 하이닉스, 마이크론, 인텔, 도시바와 낸드플래시 장기 계약을 맺고 12억5000만달러(약 1조8000억원)를 선지급하기로 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규모의 지급금이었지만, 아이팟에 필요한 대규모 낸드를 경쟁사들보다 미리 받는 효과를 거뒀다. 이는 지금도 애플 공급망의 근간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실패 사례도 적지 않다. 빅테크들은 2017~2018년 메모리 슈퍼사이클 당시 서버용 D램 수요가 폭증하자, 앞다퉈 LTA를 체결했다. 그러나 2018년 하반기 재고 조정이 시작되면서 계약 이행이 미뤄졌고, 결국 2019년 메모리 가격이 급락하는 다운턴을 맞았다.
앞서 2012년 당시 AMD는 글로벌파운드리스와 웨이퍼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일정 물량을 의무 구매하는 조항을 담았다. 그런데 PC 시장 침체로 웨이퍼 수요가 줄면서 계약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글로벌파운드리스는 2012년 4분기 일부 테이크 오어 페이 물량을 면제하는 대신 AMD로부터 3억2000만달러의 계약 변경·종료 수수료를 받았다.
|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계약을 파기하더라도 법적 구속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게 단점”이라며 “보통 5년인 계약 기간이 다소 길 수 있어 2~3년 수준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 메모리 업체들은 공급 과잉 국면에서 감산으로 가격 하락에 대응했다. 그러나 장기 계약이 늘어나면 계약된 물량을 우선 생산해야 해 감산이 쉽지 않다. 고부가가치의 AI 메모리 생산능력을 범용으로 전환할 경우 공급 과잉이 범용 시장으로 번지면서 가격 하락 압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가격 상하한을 정하는 것이 메모리 기업 입장에서는 유리할 것”이라며 “안정성을 더 갖추기 위해 선입금이나 선수금, 최소 물량 등 구속력을 높일 방법을 확보해 과거 실패 사례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