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여사가 자신의 송편을 내려다봤다. 옆자리에는 반듯하게 빚어진 송편들이 하나둘 놓이고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만두가 안 될까요?”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김 여사도 웃으며 손안의 반죽을 다시 매만졌다.
“왕년엔 잘 만들었는데. 제 것 만두가 돼서 큰일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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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병풍 앞에는 빨간색 방석이 일렬로 놓였다. 낮은 상에는 위생장갑과 여러 색깔의 송편 반죽, 깨와 흑임자·녹두가 담겼다. 행사장 한쪽에는 쌈장과 된장, 간장부터 한국 화장품과 전통 공예품까지 놓였다. 참석자들은 한복을 닮은 색동 앞치마와 꽃무늬 자수 모자를 썼다.
하얀색 상의와 검정색 바지 차림으로 들어선 김 여사는 노란색 앞치마를 둘렀다. “알록달록 명절 분위기가 난다”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앞치마를 내려다보고는 “너무 알록달록해서 한복 입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 이렇게 하고 인사해볼까요.”
사람들이 함께 일어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김 여사는 “앞치마만 이렇게 해도 명절 분위기가 난다”며 웃었다.
낮은 상 앞에 앉자 오래전 명절의 기억이 나왔다.
“어렸을 때 엄마, 친척분들과 같이 명절 전에 둥그렇게 모여 앉아 송편 빚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김 여사는 자신이 경상도 안동 집안에 시집가 송편을 자주 만들지는 않았다며 “저도 송편 만든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행사를 앞두고 걱정도 했다고 했다.
“여러분 만나는 건 너무 좋은데 송편을 예쁘게 못 만들면 어떡하지. 이거 분명 사진 찍어서 기사에 날 텐데, 선생님 어떻게 해요?”
제니퍼 리 반 셰프가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하자 김 여사는 미소를 지었다.
송편에는 사람의 기억도 들어 있었다. 김 여사는 작은어머니와 함께 송편을 만들던 때를 떠올렸다.
“‘혜경아, 요즘 뭐 하니. 사귀는 남자는 누구 있니?’ 뭐 이러면서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정말 나요.”
김 여사는 “지금은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그 추억이 너무 생각난다”며 “오늘도 명절을 앞둔 들뜬 마음으로 기쁜 얘기, 슬픈 얘기, 즐거웠던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본격적인 송편 빚기가 시작되자 김 여사는 셰프의 손끝을 유심히 바라봤다. 반죽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고, 라즈베리 파우더로 색을 냈다는 설명에는 입을 살짝 벌리며 감탄했다. 깨와 흑임자, 녹두 등 갖가지 소는 스푼으로 뒤적이며 살펴봤다.
흑임자 설명이 나오자 “검은 머리 의미도요”라고 말을 보태 또 한 번 웃음을 끌어냈다.
위생장갑을 낀 김 여사는 반죽을 손바닥에서 돌돌 굴렸다. 깨 소를 넣으면서는 “어렸을 때 보면 깨 만들기가 어렵더라. 한번 터지면 수습이 안 된다”며 웃었다.
어릴 적 입맛 얘기도 나왔다. “저 어렸을 때는 콩 안 먹고 깨만 먹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콩만 찾는다”며 “나이 든 건가요?”라고 했다.
그러다 손에 든 송편을 내려다봤다.
“제 것 만두가 돼서 큰일났어요.”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 나오자 김 여사는 “맞아요”라고 맞장구쳤다. 셰프가 “저는 예쁜 딸이 둘입니다”라고 하자 곧장 받아쳤다.
“아니, 셰프님 왜 그러세요. 전 아들만 둘인데.”
다시 웃음이 터졌다.
김 여사는 옆 사람의 송편을 연신 살폈다. “어우, 예쁘게 하셨다” “오우, 잘하시네요”라고 감탄했다. 자신의 송편을 만지다가는 “아, 동글동글하게 모으는 게 낫다”고 혼잣말을 했다. 잘 빚어진 송편을 보고는 “역시 딸을 낳으신 분은 예쁘네요”라며 또 웃었다.
사진을 의식한 농담도 이어졌다.
“선생님, 송편은 너무 예쁘게 빚으셨다. 사진 찍을 텐데 이따 제 것 좀 만들어 주세요.”
옆에서 “제 것보다 나은 것 같은데요”라고 하자 김 여사는 자신의 송편을 다시 보고는 “그런 것 같아요”라고 했다.
손은 송편을 빚고 있었지만 이야기는 음식과 사람으로 계속 뻗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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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수업을 찾는 외국인이 크게 늘었다는 설명을 들은 김 여사는 외국 정상들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외국 정상들 만나보면 젓가락질, 김치 이런 거 너무 편하게 하셔서 제가 깜짝 놀라요.”
김 여사는 “K컬처라고 해서 K팝, K뷰티 여러 가지가 있는데 K푸드는 사람 입맛을 결정하는 것”이라며 “한번 길들이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셰프를 바라보며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미국 사람들이 떡을 안 먹었잖아요. 김밥도 안 먹더니 어쩜 통김밥을 그렇게 잘 먹는지, 떡볶이도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송편은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돌아다니면서 좀 도와주시면 안 돼요? 좀 도와주세요, 선생님.”
다른 참석자를 가리키며 “선생님, 여기는 긴급 처방이 필요해요”라고 하자 테이블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송편을 빚던 김 여사는 문득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 대해 말했다.
“저는 마음이 복잡하고 그럴 때는 만두나, 손으로 많이 하는 단순 작업 있잖아요. 이런 거 많이 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집중하면.”
그러면서 “음악 테라피도 있고 미술 치료도 있는데 음식 치료도 굉장히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날 함께 상에 둘러앉은 이들은 뉴욕에서 한인 가정의 여러 어려움을 상담해온 뉴욕가정상담소 관계자들이었다. 송편을 빚는 손 사이로 가족 이야기가 나왔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대화는 다시 음식으로 돌아갔다.
김 여사는 얼마 전 잡채를 만들었다며 “외국에서는 당면 구하기가 힘들잖아요. 스파게티 면으로 했는데, 어머 괜찮더라고요”라고 했다. 야채와 버섯을 넣어 만들었다며 한 번 해보라고 권했다.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다.
“이름은 잡채!”
한참 이야기에 빠져 있던 김 여사는 다시 손을 내려다봤다.
“얘기하다 보니까 모양이….”
옆자리 송편이 점점 예뻐지는 것을 보고는 “어머, 예뻐지셨어요”라며 감탄했다. 어머니가 송편을 찔 때 솔잎을 넣던 기억도 떠올렸다. 셰프가 요즘은 공기오염 때문에 솔잎을 쓰지 말라고 한다고 하자 “아, 그런가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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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 기다리시나 봐요. 다 했어요. 망신당하는 거 아닌지…. 아이, 모르겠다.”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송편의 모양은 제각각이었지만 사람들은 한 상에 둘러앉아 같은 일을 했다. 반죽을 만지는 동안 돌아가신 작은어머니가 떠올랐고, 어머니가 솔잎을 깔아 송편을 찌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낯선 땅에 자리 잡은 한식과 마음이 힘들 때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명절은 어쩌면 잘 차려진 음식보다 그 음식을 함께 만들며 나눈 기억으로 오래 남는지도 모른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많은 뉴욕에서는 더욱 그랬다.
김 여사는 완성된 송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짜 추석 때 추석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 같아요.”
잘 빚어진 송편도, 만두를 닮은 송편도 한데 놓였다. 뉴욕에서 조금 먼저 시작된 추석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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