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공짜는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실제로 먹으면 큰일난다. 여기에 들어 있는 수산화나트륨은 독극물이다. 양잿물에 소라를 재워 팔던 일당이 적발돼 유죄 판결을 받은 건 이런 이유에서다. 서양(西洋)을 떼어, `잿물`만 놓고 보더라도 달라질 건 없다. 잿물은 나무를 태운 재를 물과 섞고 걸러낸 물이다. 근대화 이전에 세수와 세탁 용도로 썼다. 영양학적으로 둘째치고 탄 음식이 유해하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불을 직접 쐬는 직화든, 프라이팬이나 냄비 등 조리 도구를 이용하든 타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기 조직이 검게 타는 것은 물론이고 불에 시커멓게 그슬리는 것도 탄 것으로 봐야 한다. 당질이 많이 들은 식품을 고온으로 조리해도 마찬가지다. 아크릴아마이드와 같은 발암물질이 생성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암 유발 물질이다.
혹자는 탄 음식이 유해하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발암물질이라도 소량이라면 당장 유해한 증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되레 고기를 구울 때 발생하는 연기와 미세먼지가 건강에 더 유해한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사실 모든 탄 음식을 배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 대표적이다. 음식을 불로 구우면 타면서 일으키는 화학 반응 일종이다. 아미노산과 환원당을 만들어 음식 풍미를 끌어올리고 맛에 깊이를 더한다. 겉면이 바삭해지면서 음식 안의 즙을 잡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려면 적당히 `태워야` 한다.
동의보감은 약재를 일부러 태워서 복용하라고 권한다. 뱀이나 지네 같은 독이 있는 동물을 먹고 걸린 병은, 환자의 몸에서 나온 회충을 태워 가루로 내어 먹으면 낫는다고 한다. 황새 뼈를 태워서 먹어도 마찬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원숭이 대가리 뼈를 태워 먹으면 어린아이의 풍을 다스리는 데 좋다고 한다. 아이가 탈항증(창자 등이 항문으로 빠지는 증상)을 앓으면 자라 대가리를 태워 뿌리면 가라앉는 효과가 있다. 신생아의 탯줄은 태워서 물에 타 마시면 학질을 다스리는 데 좋다.
그래도 적당히 태우거나, 특별히 태워야 하는 게 아니고서는 탄 음식을 멀리해서 나쁠 게 없다. `탄 음식은 먹지 말고, 고기는 공기가 잘 통하는 데서 구우라`는 옛말은 틀릴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