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시 서남대 남원캠퍼스. 불과 몇달 전까지만해도 학생들이 담소를 나누며 걸었던 캠퍼스도 운동장도, 대학 건물도 모두 텅빈 채 싸늘했다.
캠퍼스 한복판에 공사 중이던 건물까지 방치돼 있어 음산하기까지 했다. 지난달 28일 문을 닫은 서남대는 벌써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 뚜렷했다.
뿌연 대학 건물 유리창은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고 잠긴 문 너머 건물 안은 먼지로 덮여 있었다. 건물 밖은 쓰레기와 낙엽이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뒹굴었다. 간호대학 건물 1층은 물이 발등까지 찰 정도로 잠겨 있었다. 겨우내 비어있는 건물 수도관이 동파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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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서남대 남원캠퍼스와 아산캠퍼스에 폐교 절차를 위해 캠퍼스마다 관리직원 1명씩을 남겼다. 남원캠퍼스에 남은 A씨는 서남대 졸업생이다. 대학 졸업후 모교에 취직해 20년 가까이 서남대에서 교직원으로 일했다. 그가 마지막 폐교 절차를 자원한 것도 반평생을 함께한 학교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그는 “남은 서류 정리와 함께 캠퍼스를 폐쇄하기 전 시설·건물 등을 관리하고 있다”며 “폐교를 위한 마지막 작업를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남대는 2012년 설립자 이홍하씨가 서남대 교비 333억원을 횡령하는 사학비리를 저질러 재정·경영부실에 빠졌다. 이 씨는 서남대 외에도 광양보건대학, 신경대 등 4개 대학에서 1000억원대 횡령을 저질러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남원·아산캠퍼스를 합쳐 교수 346명·직원 58명이 근무했다. 이들이 3년간 받지 못한 체불임금은 190억원에 달한다. 교직원들은 학교 재정이 악화한 이후 3년 가까이 제대로 임금을 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교직원이 체불된 임금을 받으려면 법원이 지정한 청산인이 자산 현황을 파악해 팔 수 있는 자산을 경매나 공매를 통해 매각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서남대는 남원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학교 재산을 상업시설 등 수익용으로 전환하는데 따른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만만찮다.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폐교한 대학 교직원들은 퇴직금, 실업급여도 없이 맨몸으로 사회에 내팽개쳐진다. 사학연금법 상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버팀목인 사학연금도 가입 10년 이상이 경과해야 지급대상에 포함된다.
A 씨는 “청산인이 지정되도 청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기약이 없다”며 “수백 명이 일시에 실업자가 됐는데 정부차원에서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게 황당할 따름”이라고 분개했다.
◇비리 저지른 설립자 탓 애꿎은 학생·교직원만 피해입어…지역 상권도 무너져
취재 도중 우연히 학교 본관 건물에서 마주친 이 모 교수는 “어렵게 시간강사 자리를 하나 구했다”며 “연구실에 있던 짐을 빼러 왔다”고 했다. 이 교수는 “간호학과 학생들은 다행히 특별 편입학을 잘 한 것 같다”며 “다만 대학원생들은 커리큘럼이 다르고 세부 전공도 달라 학업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 편입을 하더라도 학기 인정을 다 못받아 추가로 1~3학기를 더 들어야 한다니 걱정”이라고 했다.
시간강사 자리라도 구한 이 교수는 운이 좋은 편이다. 망한 학교 출신 교수를 받을 줄 대학은 많지 않다.
서남대 인근 모 대학 전임교원으로 자리를 옮긴 김 모 교수는 “교수들끼리 어느 대학에 가게 됐는지 말하지 않는다”며 “누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아마 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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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대 후문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송모씨(60)는 “얼마 전에 원룸과 문구점도 문을 닫았다”며 “학교 정문 쪽 편의점은 진작에 철수했다. 우리도 언제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만 폐쇄하면 끝인가, 학교 주변 지역 뿐만 아니라 남원시 자체가 활력을 잃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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