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깨친 것은 우리 전통의 소리는 서양과는 생래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었으며 이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우리의 음악’, ‘자신에 내재한 한국인 고유의 울림’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아실현을 향해 치열하게 달려갔다. 음악적으로 재탄생한 그의 신(新) 사고 결과물이 1970년대 대중가요 팬들을 사로잡은 ‘피리 부는 사나이’, ‘왜 불러’, ‘고래사냥’ 등과 같은 곡들이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특이한 음정이 구사된 ‘어~언제나’ 부분은 주목할 대목으로, 당시 서구 팝의 강한 영향 속에 있던 포크 분야 작곡가라면 누구나 꺼렸던 트롯 조(調)를 배격하지 않고 오히려 끌어안으면서 거기서 창의적이고 토착화된 포크의 숨결을 찾아낸 것이다. 그가 창작자의 필수라 할 선입견과 고정관념 배격에 치열했음을 말해준다. 전통음악 탐구에도 템포를 늦추지 않았다.
언론은 그를 가리켜 ‘음악을 연구하는 가수’로 수식했다. 송창식은 그 산물이 우리 발성·호흡·리듬의 고유성을 한층 더 높인 1979년의 노래 ‘가나다라’라고 설명한다. 곡은 ‘내 몸이 가지고 있는, 한국말에서 나오는 음악’의 결정체였으며 풍부한 성량의 이전 곡들보다 훨씬 우렁찼다. 서구적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국내 가요 풍조에서 누가 들어도 이 곡은 ‘우리’ 음악이었다.
송창식의 이런 음악 지향을 축약하자면 어쩌면 기존관습과 기성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의미에서 자유와 독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노랫말처럼 그는 한평생을 ‘바람 따라가는 떠돌이’로 ‘모진 비바람이 불어도/ 거센 눈보라가 닥쳐도/ 은빛 피리 하나 물고서’ 언제나 웃고 다녔다. 하회탈 같은, 사람 좋은 웃음은 그의 오랜 상징이다.
현재 서울 광화문 소재의 국립정동극장에서는 마침 송창식의 음악으로 구성한 창작 뮤지컬 ‘피리 부는 사나이’가 공연 중에 있다. 그의 빛나는 주요 음악을 총망라한 가운데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그 엄혹한 시절 자유와 독립을 향한 청춘들의 뜨거운 삶을 그린 작품이다. 제작사는 공연 주제와의 어울림을 위해서라도 송창식의 음악 궤적을 원했다. 송창식의 모든 노래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가 연구와 실험이란 ‘투쟁적’ 자의식임을 전제하면 내용과 주제가 잘 맞물린다.
물론 당대의 사화라 할 대마초 사건도 비켜 가고 1975년 MBC 가수왕에 등극할 만큼 무수한 히트곡을 터뜨린 그답게 강한 주제 의식의 노래만 구사한 건 아니었다. 대중들이 선호하는 인간미를 품은 따스한 노래들 또한 그의 오선지에서 줄줄이 빚어졌다. 일례로 최인호가 작사한 ‘밤눈’의 경우 음악의 본분인 온기의 공급 측면에서 압도적이다. 노래를 들으면 정말 한밤중에 눈이 내릴 것 같을 정도로 포근하다.
송창식은 결코 하나의 스타일로 범주화하면 안 될 인물이다. ‘사랑이야’란 노래 가사가 말해주듯 ‘사람의 마음 깊은 거기를 찾아가 촛불 하나 밝혀 놓는’ 사랑의 마음을 일생 품으며 실험과 투쟁을 함께했다. 음악가의 조건인 대중에 대한 존중과 강성의 음악적 태도를 다 포용한 셈이다. 실로 인기, 이미지, 성공 그래프를 뒤로하고 오로지 음악과 사랑, 삶의 진실에 봉사하면서 자신만의 예술적 크기를 확보한 드문 음악 위인이 아닐 수 없다.
송창식의 다채로운 음악의 면모가 극에 스며들어 ‘피리 부는 사나이’ 뮤지컬은 일제강점기하의 젊음이 겪은 고단한 삶의 면면들과 희로애락이 진폭이 큰 감정선을 그려낸다. 좋아하는 송창식의 곡이 나오기를 바라는 순간마다 주크박스처럼 30곡에 달하는 노래들이 줄을 잇는다. 그 음악들을 듣는 것만으로 감동 범벅이다. 이제라도 송창식 음악 뮤지컬이 나온 것에 안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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