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문서를 가장 꼼꼼히 읽어야 할 곳 중 하나는 디지털자산 업계다. 로드맵이 스테이블코인과 토큰화에 관한 규제 설계의 방향을, 그것도 지금까지의 논의와 다른 각도에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스테이블코인 규제에 두 번째 축이 생겼다. 그동안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발행자 규제에 집중돼 있었다. 누가 발행할 수 있는지, 준비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이용자가 언제 상환받는지가 쟁점이었고, 그 그릇은 국회에서 논의 중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이었다.
로드맵은 여기에 국경 규율이라는 축을 더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국경 간 유출입을 제도화하되, 그 방법은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에 맞춰 외국환거래법 등을 2027년에 개정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당연한 귀결이다. 스테이블코인은 지급수단이고, 지급수단이 국경을 넘는 일을 규율해 온 법이 외국환거래법이다. 앞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구조를 설계하려면 발행 인가와 준비금이라는 한쪽 검토에 더해, 그 코인이 외국환거래법상 지급수단에 해당하는지, 국경을 넘는 이동이 자본거래인지, 신고 의무를 누가 지는지 등 다른 한쪽의 검토가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
|
등록기관은 국내은행에 원화 통합계좌를 열고, 최종 결제는 한국은행이 새로 구축하는 역외원화결제망에서 이뤄진다. 반대로 등록되지 않은 경로에는 현행 규제가 그대로 적용된다.
요컨대 규제를 걷어낸 것이 아니라 통로를 지정한 것이고, 사전신고 면제라는 혜택은 거래가 아니라 등록된 기관에 주어진다. 사전신고가 왜 관건인지도 제도의 성격에서 드러난다.
외국환거래법은 자본거래 신고를 지급 절차보다 먼저 마치도록 정한다. 거래를 막는 규제가 아니라 시간을 묶는 규제다. 결제망이 24시간 돌아가도 그 앞에 신고 절차가 있으면 실시간 이체는 성립하지 않는다. 앞으로 나올 완화 조치들도 이 문법, 즉 등록된 통로에 혜택을 싣는 방식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셋째, 이 통로 구조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자리를 다시 묻게 한다. 같은 문서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 안으로 들이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스테이블코인이 메우려던 국경 간 결제의 공백을 은행 인프라로 먼저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역외 결제망이 제대로 작동할수록 국경 간 결제를 노린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자리는 좁아진다.
이는 로드맵이 말한 내용이 아니라 필자의 해석이다. 그 해석을 연장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남을 자리는 은행 통로가 구조적으로 닿지 않는 곳이다. 통합계좌를 열 만한 규모가 아닌 소액 거래, 등록 요건을 감당하기 어려운 비은행 사업자, 조건이 붙은 자동 결제처럼 계좌이체로는 구현되지 않는 거래가 그것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준비하는 기업이라면 은행이 잘하는 일을 더 싸게 하겠다는 구상보다 이 통로가 담지 못하는 거래를 겨냥하는 편이 낫다.
|
다만 로드맵의 토큰화는 여기까지, 즉 국채와 예금토큰이라는 중앙은행 계통 인프라에 한정된다. 발표 이후 실물자산(RWA) 토큰화 시장이 열린다는 해석이 일부 있었지만 문서에 그런 내용은 없다.
실물자산 토큰화의 판을 실제로 바꾼 것은 지난 2월 공포된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이다. 분산원장이 법적 효력을 갖는 증권계좌부로 인정됐고, 투자계약증권의 유통을 막던 조항이 사라졌다. 두 갈래의 제도가 2027년에 나란히 도착한다는 점, 그것이 이 시기를 준비하는 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큰 그림이다.
로드맵은 방향과 시기를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답은 아직 어디에도 없다. 역외원화결제기관의 등록 요건과 자격 범위, 비은행 사업자의 진입 가능 여부는 8월로 예정된 외국환거래규정 개정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규정은 입법예고를 거쳐 확정되고, 한번 그어진 선은 뒤에 바꾸기 어렵다. 업계로서는 조문이 나온 뒤가 아니라 지금이 의견을 낼 구간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