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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돈잔치의 그늘[생생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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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은 기자I 2026.09.21 04:5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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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미 관세에도 반도체발 경제 개선
쏠림·양극화 심화는 취약성 확대로 이어져
백화점식 정책·현금성 지원보다 '만일'을 대비해야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1959년 네덜란드 북부 흐로닝언에서 유럽 최대 가스전이 터졌을 때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 불렀다. 국고로 막대한 수출 대금이 쏟아져 들어왔고 정부는 넉넉한 재정으로 화려한 복지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통화가치 급등으로 기계·조선 등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은 파괴됐고 자본과 인재가 가스 부문으로만 쏠리자 10여 년 만에 기적은 파국으로 바뀌었다. 1977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자원의 축복이 산업 생태계를 마비시킨 이 풍요의 역설을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 칭했다.

대전시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반도체 생산공장(팹)에서 반도체 분야 취업을 준비하는 교육생들이 팹 공정에 대해 배우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전시 유성구 나노종합기술원 반도체 생산공장(팹)에서 반도체 분야 취업을 준비하는 교육생들이 팹 공정에 대해 배우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에 힘입은 반도체 호황으로 한국 경제에 볕이 들고 있다. 반도체를 원유나 천연가스처럼 구조적·원천적 자산으로 보면서 이번 호황이 장기적 대세 상승장의 시작이라고 낙관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중동 전쟁 여파로 인한 국제 유가 급등과 미국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라는 대외 악재 속에서 반도체라는 확실한 버팀목이 있다는 것은 국가 경제 차원에서 분명 다행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지난 6월 경상수지는 497억 3000만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고, 같은 달 상품수출은 1123억 7000만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빛은 항상 그림자와 함께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우려되는 건 쏠림과 양극화다. 반도체 한 품목이 수출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구조는 그 자체로 취약성의 다른 이름이고, 반도체가 멱살 잡아 끌어 올리는 듯한 성장에서 나머지는 소외되고 있다. 반도체가 경제 전체를 떠받치는 구조가 굳어질수록 한국 경제가 감당해야 할 충격도 함께 커진다는 뜻이다.

주요국 중 보기 드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에서 네덜란드병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이미 자본과 인재가 반도체 부문으로 쏠리고 있고 반도체 의존도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미래 성장의 주역이어야 할 청년층의 현실이다. AI 확산에 따른 산업 구조 재편과 장기화된 저성장 기조 속에서 상당수 청년들은 일자리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경제의 변두리로 몰리고 있다. 반도체 대기업의 화려한 실적 잔치 너머에는 고용 창출력이 떨어지는 기술 집약적 성장의 그늘과 일자리 양극화에 신음하는 청년 세대의 한숨 소리가 깊다.

구조적 불안 요소가 쌓이고 있지만 정부는 재정을 통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듯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발 추가 세수를 바탕으로 각 부처는 역대 최대 규모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수많은 나열식 과제로 채워진 백화점식 정책과 현금성 지원 확대는 호황기에 일시적으로 늘어난 세수에 의존한 단기 선심성 예산을 남발에 가까워 보인다. 이는 호황이 끝난 후 불어닥칠 재정 적자와 경기 침체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지름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올해 연간 우리 경제 명목성장률이 18%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같은 고성장이 지속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는 영원한 호황은 없다는 점이다.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넉넉해진 재정을 미래를 위한 구조 개혁과 사회안전망 확충에 쓰지 않고 낭비한다면 호황이 끝난 후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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