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경복궁역 근처 한 카페에 ‘82년생 김지영’들은 작심하듯 속에 있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30~40대 여성들의 이야기는 예정시간을 넘겨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마련한 ‘82년생 김지영’들과 함께하는 공감토크 자리에서다.
이 자리에는 여가부의 ‘여성 일자리 소리함’에 의견을 접수한 여성들과 ‘여성인재 아카데미’ 중간관리자 과정 수료자들, 각 분야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활약 중인 여성관리자 15명이 참석했다.
정 장관은 시작에 앞서 “많은 여성들이 고용현장에서 성차별과 출산·육아 부담으로 인한 저출산 및 경력단절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는 현장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많은 여성들은 일과 육아를 동시에 일궈 나가는데 어려움을 토로했다. 공공기관이나 대·중소기업과 관계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느끼는 고충은 모두 비슷했다. 특히 우리나라에 일하는 여성을 위한 좋은 제도가 매우 많지만 정작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 대부분이 공감했다.
자신을 ‘둘포족’(둘째 낳기를 포기한 부부)이라 표현한 B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친구들 10명 중 8명이 전업주부 자녀이다 보니 오후 3~4시면 모두 아이를 데려가고 우리 아이만 남겨진다”며 “아이한테도 어린이집에도 미안한 마음이 자꾸 생겨 결국 아이를 돌봐주는 분을 쓸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비용부담이 커지고 수입이 부족하면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둘째는 언감생신이다.
또다른 여성 C씨는 “대부분 맞벌이 부부가 일을 놓지 않는 이유는 본인의 전문성이나 경력단절을 피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며 “시간을 조금만 탄력적으로 운영해 1~2시간 일찍 퇴근하거나 30분만 늦게 출근해도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운 고개를 넘어갈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기관의 ‘스마트워크센터’처럼 민간에도 집 근처 사무실 등을 확대해 재택근무가 가능해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들은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와 칼퇴근 문화를 정착하면 소위 ‘독박육아’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남편의 직장이 파업 중이라 일을 잠시 쉬고 있다는 D씨는 “남편이 파업으로 4개월 넘게 두 아이를 키우는데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며 “남성들에게 육아경험의 기회를 주는 것이 그들에게도 더 좋다.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현재 만 8세까지만 가능한 육아휴직 기간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연장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정 장관은 “독일에서는 육아휴직기간(3년) 동안 기존 급여의 70~80%를 정부가 보전해주고 난 뒤 낙태를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율이 올라갔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또다른 여성 E씨는 “조직 내에서 공동양육문화를 형성해야 한다”며 “남성 육아휴직을 강제하면서 초기에는 회사의 부담분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직장 보육시설을 늘리고 단독으로 짓기에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기업들은 공동으로 직장 어린이집을 짓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출산육아 등 여성이 처한 사회적 지위에 비혼을 생각하게 되거나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여성들도 있었다.
김민지 한국교육방송공사(EBS) 프로듀서는 “일·육아를 병향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아직도 조직 안팎으로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다”며 “결혼을 안한 여성에게는 ‘김치녀’, 결혼하면 ‘맘충’이 되는 현실에서 개인의 의지로는 극복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내 일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결혼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결혼 자체가 ‘넘사벽’이 되는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자신을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이라 소개한 F씨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결국 일을 관두는 동생을 보며 점점 더 딩크족으로 살겠다는 확신을 가졌다”며 “아이보다는 나를 더 사랑하고 내 삶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참석자들에게 힘들면 힘들다고 더 적극적으로 외치고 개선을 바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도는 잘 돼 있지만 현실에 반영되는 비율이 너무 적다. 여러분들이 주변에 소리치고 도움을 청하고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국가의 제도와 문화의 변화, 공동체의 노력이 만나는 지점에 문제의 해결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에서는 남성 유급 출산휴가를 확대하고 공동육아나눔터를 늘리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모든 시스템을 국가가 완벽하게 해주는건 불가능하다. 육아는 공동책임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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