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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23년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17개월간 ‘민생침해 금융범죄 특별단속’의 목적으로 투자리딩방을 단속한 결과 총 검거건수는 7232건(피해자 1만4255명), 검거된 인원은 3300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투자리딩방 피해 접수건은 1만197건, 확인된 피해액은 8949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투자리딩방이 제2의 보이스피싱 범죄로 비화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특별단속에 임하겠단 방침이다.
경찰청은 특별단속을 벌이면서 투자리딩방 범죄에 대해 △원금보장·고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며 전화·문자(SMS)·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접근 △공개채팅방 참여 유도 △바람잡이(가짜 아이디 활용)가 높은 수익을 봤다며 거짓 정보를 지속해서 게시 △가짜 주식 홈트레이딩 시스템(HTS)을 통해 거짓으로 수익창출을 보여주는 등의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투자리딩방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적용 판단도 궤를 같이한다. 이 사안에서 대법원은 “피해자들이 교부한 금원은 해외 선물거래 명목의 투자금일 뿐 해외선물거래 투자수수료로 지급된 돈이 아니다”라며 “피고인들이 속여 빼앗은 재산상 이익과 용역 제공 사이에 대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말해 설령 투자를 목적으로 돈을 송금했다고 할지라도 그 돈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사기범들에게 송금됐기에 대가관계가 없단 얘기다. 이 경우 재화의 공급·용역 제공을 가장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금융기관에서는 대법원 판례를 적용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피해 구제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데일리가 KB국민은행을 포함해 IBK기업·농협·우리·신한·하나은행 등에 투자리딩방 피해 구제에 대해 문의한 결과 대법원 판례에 따르고 있다면서도 저마다 다른 기준을 내세웠다.
A은행의 경우에는 “투자리딩방 피해 구제 중 ‘일부’ 사례에 대해서만 대가성 여부에 대해서 꼼꼼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B은행의 경우에는 “대법의 경우처럼 피해를 입은 사건이 ‘선물상품 거래’인지와 ‘HTS를 통한 주식 거래’ 등이 포함됐는지 등을 따져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진짜로 투자했으나 실패해 돌려주지 못하는 일반적인 투자사기가 아닌 경찰청에서 언급한 성격의 투자리딩방 사건은 대법의 통신사기피해구제법 판례에 해당한다고 보인다”며 “금융기관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금융당국 명확한 지침 필요 호소…“법 개정도 이뤄져야”
금융당국의 늦장 대응이 금융기관의 소극적 대처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당국은 불법 투자 사기와 같은 범죄에 대해 투자자 보호 및 사전 예방을 담당한다. 그러나 대법 판결이 지난해 11월 나왔음에도 4개월 이상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않는 등 책임을 은행에 떠넘겼다는 지적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대법 판결 이후 관련 사항을 금융기관에 안내했을 뿐 구체적인 지침은 내리지 않은 상태다.
금융기관에서도 금융당국이 명확한 법률 해석을 내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이같은 지적에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리딩방 사건의 경우에는 대법 판례이지 법률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은행에서 하나하나 따져 보는 게, 특히 대법 판례 따라 대가성 여부를 보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며 “아직은 금융당국이 할 수 있는 부분은 명확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리딩방 피해구제를 위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선 21대 국회에서 투자리딩방 피해구제 관련 법안은 2021년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과 전용기 의원이 각각 발의했지만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 폐기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처럼 계좌지급정지와 피해 구제를 명문화하는 법안이 나온다면 투자리딩방도 신속한 구제를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서는 투자리딩방 구제를 위한 방안이 대법 판례뿐인 상태라 피해 사례마다 깐깐하게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