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의 AI 전략은 셰이크 타흐눈 빈 자이드 알 나하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통하며, 비(非)석유 부문의 신사업 육성을 책임지고 있다. UAE 정보기관 수장으로 실내외를 막론하고 선글라스를 착용해 ‘스파이 셰이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왕족이 가진 막대한 부를 배경으로 AI 주도권까지 쥐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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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부다비 경제 재건을 고민할 때 동생인 그는 무술, 사이클, 체스, 게임에 심취했었다. 주짓수에 빠져 직접 세계적인 대회를 만들었고, 사이클에 매료됐을 때 초경량 자전거를 만드는 이탈리아 회사 콜나고를 인수했다. 체스에 몰두했을 땐 체스 전용 슈퍼컴퓨터인 하이드라(Hydra)를 만들었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라는 게임에 빠졌을 땐 게임 회사의 직원을 개인 코치로 고용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무엇인가에 몰입하면 막대한 부를 투자해 열정을 쏟아냈다. 그러던 그의 관심사가 AI로 향했다. 2017년 말 구글의 AI 프로그램인 알파제로가 규칙을 배운 지 단 4시간 만에 세계 최고의 컴퓨터 체스 프로그램 스톡피시를 이기면서 ‘AI의 힘’에 눈을 뜨게 됐다. 이듬해 그는 AI 국영기업 ‘G42’를 설립했다.
자신의 집착을 현실로 만들어온 인물이기에 AI 업계에서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UAE는 AI 혁신의 중심지가 되기를 원하며 타흐눈 보좌관은 현재 세계에서 AI 산업에 가장 많은 자금을 운용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아부다비의 2개의 국부펀드를 총괄하며 약 1조5000억달러(약 2200조원) 규모 자산을 AI 산업에 쏟아붓고 있다. 그가 주도하는 AI 투자 전용 펀드 ‘MGX’를 통해 500억 달러 이상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며, G42도 AI 분야에 수십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예정이다.
실제 투자처를 보면 UAE는 최근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700억 달러 규모 AI 투자 약속을 했으며, MGX는 소프트뱅크와 오픈AI가 주도하는 1000억 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스타게이트’에도 참여했다. 오픈AI, 일론 머스크의 xAI, 아마존이 후원하는 앤트로픽 등 AI 선도 기업에도 적극 투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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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 모델을 출시하면서 AI에 대한 막대한 투자 필요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AI 시장이 거품일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타흐눈 보좌관은 개의치 않는다. 아부다비 왕궁에서 AI 연구원들이 개발한 특별한 대시보드를 통해 전 세계 대형 AI 모델의 발전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그가 소유한 여러 기업에 AI 도입을 강력히 지시하고 있다.
더 나아가 AI를 활용해 UAE를 ‘글로벌 AI 허브’로 만들겠다는 야망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아부다비에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 건설, TSMC와 삼성전자와 논의해 반도체 공장 유치 추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가스 및 원자력 발전소 확대, AI 스타트업 육성 및 글로벌 기업 유치 등에 힘쓰고 있다.
UAE는 오랫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스위스’ 같은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며 양국과 거래를 해왔다. 그러나 AI 기술 확보를 위해선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었다. 미 정부가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할 수 없다”고 경고하자 타흐눈 보좌관은 결국 미국을 택했다. 자신이 소유한 AI 기업 G42에서 사용하던 중국 화웨이 장비를 모두 제거했고, 미국과 협력 강화를 위해 MS와 AI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MS가 15억 달러를 G42에 투자하고 이사회에 합류키로 하면서 본격적으로 서방 AI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MGX의 자금 70~80%는 미국에 지출할 계획이다.
타흐눈 보좌관은 트럼프 행정부와 정치적 관계를 맺는데도 적극적이다. MGX는 지난해 머스크의 xAI가 주도한 60억 달러 투자 조달에 참여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운용하는 펀드에 15억 달러 규모 추가 투자에 참여했다. 쿠슈너는 최근 한 팟캐스트에서 타흐눈 보좌관이 2018년 AI에 대해 2시간 동안 이야기한다면 만나겠다고 한 일화를 전하며 AI가 미래를 바꿀 것임을 예견한 그의 전략적 행보를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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