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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날 사회1 분야 ‘주요현안 해법회의’를 열고 “의료계가 대화에 참여한다면 2026년 의과대학 정원 확대 규모를 제로베이스에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 같은 조치를 내놓은 것은 신학기가 시작되는 3월 전 전공의·의대생 이탈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서다. 여기에 김택우 회장이 의협 회장에 취임하면서 새롭게 의정관계를 맺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회장 취임 직후 ‘정부가 의대교육 마스터플랜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는데 교육부는 이를 반영해 곧바로 관련 계획을 발표, 의대 학생이 차질 없이 수업받을 수 있게끔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러브콜에도 불구 의료계, 특히 전공의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무엇보다도 정국이 불안정하고 정원 감축에 확신이 없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협의에 나선 이후 곧바로 정부가 바뀌면 의대 정원 이슈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질 수 있다. 또 전공의는 현재 의대 정원 증원 철회가 아닌 앞으로 몇 년간 의대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서 기존보다 많아진 의대생을 다시 예전 수준으로 줄이려면 2025년도에 늘어난 1497명 이상의 의대생을 뽑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2026년 의대 정원을 증원 전인 2024학년도(3058명)보다 더 줄일 수 있다면 대화의 여지가 있겠지만 예년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대화에 나서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의대 교수들 역시 ‘정부가 전향적으로 바뀌었다’고 판단하지만 전공의들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학회 이사장은 “각 병원 수련 파트에서도 얘기가 나오지만 전공의들이 대부분 수련 특례를 일종의 ‘자수 기간’처럼 보인다고 한다”면서 “겉으로는 사과하고 속으로는 지금 복귀 안 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성 메시지로 보인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2~3년 버틸 생각을 하면서 이미 일자리를 잡은 전공의들이 많다”면서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 주류인데 정부가 백기 투항하지 않는 이상 이들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의 강경한 태도 또한 전공의 복귀를 가로막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전(前) 대한의사협회 임원은 “현재 의협과 박단 회장이 전공의 단체행동의 이정표인데 지금까지 강경하게 이끌어왔던 박단 회장이 이 정도 선에서 대화에 나선다면 전공의 사이에서 그 여파가 만만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협이 대화에 나선다고 해도 첨예한 갈등이 예상된다. 의협은 지금까지 추진된 의료개혁 논의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많은 이해관계자가 참여했던 논의가 한순간에 무산될 수 있어 정부가 가볍게 승낙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에 대해 의료계 관계자는 “의협 등 의료계는 연내 정부가 바뀐다는 가정을 한다면 현 정부와는 협상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새 정부와 원점에서 협상해야만 문제 해결이 용이할 것으로 판단하는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