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AI 격차, 새로운 세습이 되기 전에[별별법]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남궁민관 기자I 2026.05.17 11:00:03

■다양한 주제의 법조계 이야기
AI, ''학습의 도구'' 넘어 ''결과의 격차'' 만드는 시대
국가 지금 즉시 AI 격차 해소에 개입해야
''AI 교육 지원금'' 도입·공공 AI 플랫폼 구축 서둘러야
저소득 가정 비롯 도서·산간 학생 위한 디바이스·...

[추원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 인공지능(AI)이 학습의 도구를 넘어 결과의 격차를 만드는 시대가 열렸다. 어떤 AI를 쓰느냐가 어떤 교육을 받느냐를 결정하고, 부모의 지갑이 자녀의 산출물을 좌우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의무교육이 출발선을 맞추기 위해 도입됐듯 국가는 지금 즉시 AI 격차 해소에 개입해야 한다.

교실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같은 과제를 받아도 어떤 학생은 월 수십, 많게는 수백달러의 최상위 모델로 정교한 보고서를 만들고 어떤 학생은 무료 챗봇의 기본 응답에 의존한다. 도구의 차이는 곧 사고의 차이로 사고의 차이는 곧 평가의 차이로 이어진다. 사교육비 격차가 학력 격차를 낳던 시대를 우리는 이미 겪었다. AI는 그 격차의 폭과 속도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

체감되는 사례는 이미 도처에 있다. 유료 모델을 쓰는 학생은 영작문 첨삭과 수학 풀이 과정 검토를 자정에도 받지만 무료 모델만 쓰는 학생은 응답 한도에 걸려 과제 마감을 놓친다. 유료 고가의 AI 튜터를 붙이는 가정과 그조차 엄두를 못 내는 가정의 간극은 과거 과외 시장의 격차를 그대로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 놓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그 격차가 24시간 작동한다는 것이다.

추원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사진=YK)
더 무거운 문제는 이 격차가 대를 잇는다는 점이다. 상위 AI로 작성된 자기소개서와 수행평가는 더 나은 내신, 수행, 입시 결과로, 더 나은 입시 결과는 더 나은 대학과 직업으로, 그 결과는 다시 다음 세대의 AI 접근권으로 환원된다. 능력주의의 외피를 두른 새로운 세습이다. 운동장이 기울어진 채 출발선을 그으면 그것은 더 이상 공정한 경주가 아니다.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같은 조 제2항은 의무교육을, 제3항은 의무교육의 무상을 규정한다. 헌법 제11조의 평등권과 결합해 읽으면 국가는 단지 학교의 문을 여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 기회의 실질적 균등을 보장할 적극적 의무를 진다. AI가 사실상의 교과서이자 교사가 된 지금 그 접근권을 시장에만 맡기는 것은 헌법의 명령에 부합하지 않는다.

비교법적 시각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과거 인터넷 보급기에 각국은 디지털 격차 해소를 공공 과제로 받아들였고, 우리도 정보화 교육과 PC 보급으로 격차를 좁힌 경험이 있다. AI는 그때의 인터넷보다 학습과 노동에 더 깊이 결합된다. 인프라가 아닌 ‘지능’ 자체가 차등 분배되는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시장의 자율 조정에 기대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

방법은 이미 우리 손에 있다. 첫째, 초·중·고교 학생 전원에게 일정 수준의 유료 AI 이용권을 바우처 형태로 지급하는 ‘AI 교육 지원금’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 공교육이 검증한 안전·고성능 AI를 학교 단위로 무상 공급하는 공공 AI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저소득 가정과 도서·산간 지역 학생을 위한 디바이스·통신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무상급식의 논쟁을 되풀이할 때가 아니다.

여기에 더해 교사의 역량 강화도 한 축이 돼야 한다. 도구만 쥐여주고 사용법을 가르치지 않으면 격차는 다른 형태로 부활한다. 활용 교육과 윤리 교육, AI가 만든 산출물을 검증하는 비판적 독해 능력까지 공교육이 책임지고 길러내야 한다. 그래야 지원금이 단순한 소비 보조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학습 역량으로 전환된다.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 격차를 방치헤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그 몇 배에 달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긴 사회는 활력을 잃고, 인적 자본의 저활용은 국가 경쟁력의 손실로 직결된다. AI 격차 해소는 시혜가 아니라 투자이며, 평등권의 실현인 동시에 경제 정의의 출발점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지금 입학하는 초등학생이 졸업할 때쯤이면 AI 격차는 이미 굳은 신분이 돼 있을 것이다. 국가는 즉시 개입헤해 모든 학생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운동장을 평평히 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이 약속한 균등한 교육의 실현이며,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유산이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